얼마전 이음아트에 들렸다가 빠알간 책 한권을 발견했다.
제목도 무서운, 그러나 심금을 울리는 '부서진 미래'.
읽고 나서 한참 우울했고
한참 후에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우리의 미래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당신의 미래는 또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가볍게 살고 있는 자신의 허무한 마음을 합리화 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서문처럼, 그들의 삶을 훔쳐본 것에 위안할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해 준 책.
삶이란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 이 된다면, 나는 - 를 하고 싶다, 라는 조건부 문장들은
영원히 하고 싶은 것 가까이 갈 수 없는
우리의 슬픈 삶을 떠 올리게 한다.
(이 책이) 가볍게 살고 있는 자신의 허무한 마음을 합리화 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생의 하중을 견뎌오면서 만들어진 그분들의 얼음작살 같은 목소리가 될 수 있으면 마음에 오래오래 박혀서 많이 아파주기를 바란다. p 8 (서문 중에서)
하지만 그것은 '온갖 합법적인 것, 도덕적인 것, 능력 있는 것'으로 가장하여 우리에게 왔다. 그것이 '자본의 전쟁인 세계화'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본의 전쟁인 세계화는 습기처럼 조금씩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황폐화시키고 있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며 미묘하다. p 10 (서문 중에서)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이 상시화되고 내일을 꿈꿀 수 없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인생이 번성하는 것이다. p 10 (서문 중에서)
이 제 도시 안에서 어느 한 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면서 사는 정주민의 편안한 삶은 끝이났다. 일을 따라 떠도는 유민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의 연속된 생활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문화를 만들어내던 우리들의 삶은 이제는 하나의 일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불연속적이고 단절된 삶을 상시적으로 불안정하게 살게 된 것이다.p11 (서문 중에서)
12 월에는 한 달 쉬는데, 저는 그 달이 가장 숨 막히고 힘들어요. 다음해에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는 달이거든요. 올해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이 돼요. 만약 안 되면 무얼 해야 할지.....p 34 ('더 이상은 안 돼' - 가정복지도우미 이점순 아주머니 중)
아파트가 도시의 지배적인 생활공간이 되었지만 값이 오르면 팔아서 돈이 되는 상품이지 삶을 담는 공간이 아니에요. 고단한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공간이 없어요. 우리 삶은 여전히 괴롭고 팍팍하죠. p 85 (그 해 겨울, 달수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건축 설계노동자 장달수 중)
IMF 맞으면서 절반으로 확 깎였어요. 남성임금이 70% 정도로 떨어졌다면, 여성임금은 특히 아줌마들 임금은 거의 절반! 기술자인데도 보조 수준이에요. 여자라는 이유로. p91 (그 해 겨울, 달수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건축 설계노동자 장달수 중)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는데 한 두 사람 건축가의 개인적인 디자인 개념이 아니고, 다수의 의견, 목소리, 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은 당연히 아름다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p104 (그 해 겨울, 달수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건축 설계노동자 장달수 중)
정아씨, 한 번 생각해봐요. 작가 안 하면 뭐 할래요? 다른데 취직할래요? 영어 점수 있어요? 아님 어디서 아르바이트 할래요? 그건 또 못하죠. 괜히 그런 자존심 있잖아요. 그래도 난 영화 만들어. 그래도 난 방송 만들어. 결론은 배운 게 이거인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거죠. 이게 바로 대다수 스태프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요. 사실은 관두고 싶어요. 왜냐하면 돈이 안 되니까. p117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래도 넌 하고 싶은 일 하잖아, 이러면서요. 그럼 전 스스로를 위로하죠. '그래 난 꿈을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해'라고요. p117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많아요.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사람들. 아무도 그 사람들에게 현장의 현실을 말해주지 않아요. 나쁘게 말하면 이용하는 거죠. 너희들의 종사 직종은 비정규직이고 특수고용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죠. p121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방송, 영화'라는 환상을 이용한 착취. 무너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근데 우리 현실은 울산 건설 플랜트 노조와 다를게 없어요. 아니 더 열악하죠. CJ같이 영화에 투자하는 원청기업이 있죠. 그리고 제작사를 거치면 우리는 하청 비정규직 직원이에요. p124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우리는 리모컨을 쥐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고, 영화관은 넘쳐나지만 볼 수 있는 영화는 한정되어 있고. p131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우리가 이 곳에서 싸우는 이유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바닥에서 인간답게 먹고 살기 위해서니까. p132 (우리가 꿈꾸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 영화 스태프 최진욱, 방송작가 은정아 중)
아마 실패를 몰랐더라면,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래도 교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헤헤. 내 천성은 공부라고 생각햇었을 것 같아요. 잃은 건 아무래도 자신감이겠죠. p139 (청춘유예 - 취업준비생 김민아 중)
(유럽여행을) 갈까말까 무척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또 공부한다고, 또 후회돼요. 항상 제 인생이 이런 식이에요.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해야겠지. p150 (청춘유예 - 취업준비생 김민아 중)
가만 있으면, 계속 이래야 되겠니, 다른 애들은 다 이렇게 발전하는데 넌 혼자 뭐 하니 하면서 제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에요. p152 (청춘유예 - 취업준비생 김민아 중)
사실 여대가 힘든 것 같아요. 기업에 들어가도 끌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저도 괜찮은 사람 만나면 취직 안 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p154 (청춘유예 - 취업준비생 김민아 중)
일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은데 지겨워요. 정말 지루해요. p163 (다시 태어나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안지호 중)
물적 소유뮬을 다 털어내고 외부에서 빌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웃소싱이 판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기업가는 이렇게 말한다. '핵심 사업에 필요치 않으면 모두 밖으로 돌려라!' p201 ( 나이스 잡, 뷰티풀 라이프? - 용역회사 휴면링 김정식 사장 중)
힘 겨루기라는 게 그거야. 누가 높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지. 아웃소싱 업계는 그런 게 대단해. 진짜 수개월동안 다리 품 팔고, 서류 갖다바치고 원하는 거 각종 정보 다 가져다 줬는데 결과는 다음에 하겠다는 거야. 나중에 들리는 소리는 거기 출신이 하나 늘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넘어갔다, 이러는 거야. 이럴 때는정말 이 업을 하고 싶지 않지. p208 ( 나이스 잡, 뷰티풀 라이프? - 용역회사 휴면링 김정식 사장 중)
개 중에 해고 되는 사람은 자격도 안 되고, 실수를 많이 하거나, 회사에 불평불만 많고, 본사 지침에 따르지 않거나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빼지. 그거 불문율이야. p210 ( 나이스 잡, 뷰티풀 라이프? - 용역회사 휴면링 김정식 사장 중)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잖아. 자유경쟁시대라고. 우리도 경쟁 사회에서 언제 도태될 지 몰라. 그렇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춰야돼. 어디든 낮은 임금을 찾아나서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p211 ( 나이스 잡, 뷰티풀 라이프? - 용역회사 휴면링 김정식 사장 중)
2005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약 30여일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 내용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동안 구직자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일자리 수는 1236개로 전체 일자리의 96.6%로 나타났다. 이는 정규직 일자리의 28배가 넘는 수치이다. 나머지 3.4%에 해당하는 정규직의 자리마저 남성을 원하는 일자리가 여성의 5배가 넘었다. p229 (다시 목련을 기다리며 - 기륭전자 노동자들 중)
입사한지 3개월도 안 돼서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고 나흘을 출근했던 석순 언니와 종희 언니의 해고 사유는 '잡담'이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사유를 캐고 들었고, 관리자에게 강압적으로 업무량을 2배로 늘린 것에 대해 문제제기한 것이 그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p237 (다시 목련을 기다리며 - 기륭전자 노동자들 중)
힘든 공정을 교체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가 '조장 지시 불이행'이라는 사유로 해고된 옥분 언니는 해고되던 날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태어나서 정말 이렇게 서럽게 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그 느낌을 '지구상에서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고 표현하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몸이 아파도 아이가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특근 한 번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해 온 직장이라는 공동체에서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내몰리게 될 때 노동자들이 느끼게 되는 심리적 박탈감과 자존감 훼손은 심각하다. p239 (다시 목련을 기다리며 - 기륭전자 노동자들 중)
여성들이, 여성노동자들이, 특히 결혼한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을 한다는 것, 그것도 집 밖에서 철야농성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엇다. 말로는 열심히 하라면서 농성중인 아내에세 '와서 밥하라'고 계속 전화를 해 대는 남편. 처음에는 열심히 하라고 지지해주고 밥도 하며 빨래도 하다가 일주일, 열흘이 넘어가니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남편과 아이들. p253 (다시 목련을 기다리며 - 기륭전자 노동자들 중)
다양한 형태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노동법도 모르는 젊은 친구들이었으며,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강요된 절반의 가격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일을 해도 해도 생활하기 힘든 빈곤층으로 그들은 합류되고 있었고, 사회에서 가장 성숙되지 못한 폭력적인 자리에서 빛나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p264 (닫힌 삶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변창기, 정규직 이규희 중)
한시적 하청 - 계속 일시키면 나중에 퇴직금 문제가 있으니까 일이 있어도 바로 안 시키고 쉬었다 와라, 이러는 거죠. 그러면 중간에 끊기니까 계속 고용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하청 사장이 퇴직금을 받아서 챙기는 경우도 있어요. p269 (닫힌 삶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변창기, 정규직 이규희 중)
그들은 한 번 하면 25만원쯤 받는데 우리는 8만원인 거예요.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갭이 벌어지는 이상한 체계죠. p276 (닫힌 삶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변창기, 정규직 이규희 중)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섭취하기가 바쁘게 답안지에 뱉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희망 없음'을 구체적으로 인식해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내가 공부를 못해서' '내 능력이 모자라서'를 연발하는 원경미씨가 연애도, 희망도, 가슴 두근거리는 그 무엇도 임용고시 합격 뒤로 미루어 놓고 감벙을 마비 시켜 가는것도 어쩌면 오늘날 학교가 만들어 낸 닮은 꼴이다. p323 (학교, 무기력 제조공장 - 기간제 교사 원경미 중)
할머니들도 예전에는 자연의 시간과 리듬에 따라 일을 했는데 지금은 콘베이어 벨트처럼 비닐하우스 속 식물에 맞춰 매우 빠르고 기계적으로 일을 했다. p384 (녹두, 호밀이 사라지니 나도 사라지네 -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할머니들 중)
전혀 예측이 안 돼. 무엇을 얼만큼 지어야 할지. 불안해. 점점 더. p410 (녹두, 호밀이 사라지니 나도 사라지네 -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할머니들 중)
(...) 일 싹다 혀 놓고 갔다 와야지 / 일 싹 다해 놓고? 뭐 우리 같은 일은 죽어야 싹 다허제. /그려 여자들 일이 죽어야 다 끝나제 p413 (녹두, 호밀이 사라지니 나도 사라지네 -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할머니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