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니까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9. 4. 16. 01:41
감기에 걸린 나는 바보가 아니다.
골골거리는 나를 보고 룸메는,
'엄마를 보니 보살핌을 받고 싶은 무의식이 발동하여 감기에 걸리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적절하지 않은 감기다. 쉰다해도 맘이 편할리 없는, 보살핌을 받더라도 마구 응석부릴 수는 없는, 하필이면 그런 날에!
자다 일어나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엔 중학생들이 많았다. 다들 똑같은 단발머리를 하고, 비슷한 운동화를 신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문제집을 푸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래된 녹취파일들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어떤 것들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너무 많이 봐서 토할 거 같았다. 이제 겨우 정리했다 싶었는데 다시 원점인 이 기분.
내일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미디어교육을 시작한다. 오랜만이라 나도 설레서 책도 좀 더 읽고 준비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하루 전 준비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PPT를 만드는데, 오피스 프로그램이 말썽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들어와 이리 끄적이는 중. 벌써 한 시도 넘었고, 나는 자야할 뿐이고, 할 일은 아직 산더미일 뿐이고..
우울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얼마전 읽고 혼자 배터지게 웃었던 만화를 하나 옮겨와 본다. ㅎㅎ
난 지금도 일기 쓴다;;;
술 몇 잔 먹었는지 기록용으로;;
골골거리는 나를 보고 룸메는,
'엄마를 보니 보살핌을 받고 싶은 무의식이 발동하여 감기에 걸리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적절하지 않은 감기다. 쉰다해도 맘이 편할리 없는, 보살핌을 받더라도 마구 응석부릴 수는 없는, 하필이면 그런 날에!
자다 일어나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엔 중학생들이 많았다. 다들 똑같은 단발머리를 하고, 비슷한 운동화를 신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문제집을 푸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래된 녹취파일들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어떤 것들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너무 많이 봐서 토할 거 같았다. 이제 겨우 정리했다 싶었는데 다시 원점인 이 기분.
내일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미디어교육을 시작한다. 오랜만이라 나도 설레서 책도 좀 더 읽고 준비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하루 전 준비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PPT를 만드는데, 오피스 프로그램이 말썽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들어와 이리 끄적이는 중. 벌써 한 시도 넘었고, 나는 자야할 뿐이고, 할 일은 아직 산더미일 뿐이고..
우울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얼마전 읽고 혼자 배터지게 웃었던 만화를 하나 옮겨와 본다. ㅎㅎ
난 지금도 일기 쓴다;;;
술 몇 잔 먹었는지 기록용으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효순씨 윤경씨
take #2009. 4. 15. 00:52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시즌 2에서 제일 좋아했던, <효순씨 윤경씨>
똑같은 말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 그리고 얼만큼 진심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정말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실감.
마음껏 퍼나르는 것이 이번 제작에 중요한 모토라고 하니,
보신 분들도 퍼가기 고고싱!
걷다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9. 4. 13. 03:34
요며칠 많이 걸었다. 날씨는 갑자기 더워졌고, 주말엔 여기저기 꽃구경인파가 몰렸고, 여성영화제에는 사람이 그득거렸다.
약간 화가 났던 영화 한 편을 보고, 신촌에서 아현까지 걸었다. 지하철역으로는 고작 두 정거장. 밤 기운은 낮의 후덥지근함보다는 나았다. 정작 하려던 얘기는 걷는 동안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걷는 게 좋았다.
다음날은 사람들로 가득찬 남산길을 혼자 걸었다. 내가 버스보다 빨리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좁은 인도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걷다가 새 전화기로 사진을 찍었다. 해 질무렵의 남산은 참 좋았다. 몹시도 더웠던 집이었지만, 해 질 때만큼은 너무나 예뻤다. 교회 십자가 너머로 보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게, 우리들의 함께 살기의 낭만적인 시작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시작의 설렘은 이제 생활의 익숙함이 되었지만, 아마 아주 오랜 후에도 남산 자락에 있던 그 집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곱등이와 거미와 모기와 쥐며느리의 천국이었지만, 우리에게 특별했던 곳.
걸으면서 천천히 많은 것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이런 저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되고, 각종 아이디어들도 피어오르고, 가끔은 블로그에 포스팅할 거리도 생각하지만, 대체로 집에 돌아오면 퍼진다. 집과 일터가 걸어갈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이 새삼 슬프다. 지하철과 버스에 실려 집까지 밀려오면 너무 지쳐버린단 말이지. 배만 고프고...
남산을 걸어내려가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여성영화제에 갔다.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를 봤는데, 참 좋았다. 같이 본 나비도 계속 울었다고 했는데, 나도 계속 울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굉장히 위로 받은 느낌이 든 나머지 진보신당에 입당을 할까를 고민하기까지 했다. ㅎㅎ 영화에 대한 얘기는 좀더 기운이 나면 다시.
봄이니 좀 더 신나게 걸어보자.
+>
루씨에서는 요 이쁜이도 만났으니 후후. 여전히 말썽쟁이라 하루 한 번은 혼나지만, 그래도 내 생애 다시 없는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 이 아이에게 내 다리가 편안한 공간이라는 것에도 이제 조금씩 익숙해 진다. 아침마다 깨우는 통에 정신 없긴 하지만.
위 사진은 잠들기 직전 룸메의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고 이쁨을 뽐내고 있는 수키님.
아파트 문을 나서는 순간, 후끈한 기운이 몰아친다. 차가운 시멘트와 견고한 알류미늄 샷시에 갖혀있다가 직사광선을 맞이하니 다른 세상인 거 같은 기분. 바람은 어제와도 다르게 뜨듯하다. 하루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뀐다. 꽃도 하루만에 피고, 바람의 느낌도 달라지고, 그런 걸 보면 하루는 참 긴 시간이다.
생각지 않았던, 일종의 '공강시간'이 생겨서 핸드폰을 구경하다가 덜컥 사버렸다. 당장 내야할 돈은 없지만, 할부로 조금씩 돈은 빠져나갈 것이다. 쓸데없는 사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소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나여... 어제와 오늘에 걸쳐 '결혼제국'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이 세대들에게 신자유주의의 함정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앞뒤로 여러가지 맥락이 있지만, 이 뒤에 2-30대 여성을 '한 마디로 바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이라는 우에노씨의 발언도 나온다. 크크. 그 뒤에 노부타씨의 대사 - "정말 인정사정도 없는 노골적인 말투네요." 동의할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오랜만에 킥킥거리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곱씹어볼 내용도 상당하고. 핸드폰 산 얘기가 어쩌다 여기로 왔지? 킁.
뭐 이래저래 해서 엘지텔레콤으로 이동. 번호는 그대로 쓸 수 있다(다행이도) 정든 나의 핸드폰아, 사요나라!
어제는 바다에 다녀왔다. 몇 년만에 아버지와 함께하는 하루짜리 여행. 회를 진탕 먹고, 낮술도 진탕 마셨다. 사진 속에 퉁퉁한 내 얼굴을 보며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외쳤지만 역시 귀찮다. 요즘은 그저 힘주어 걷는 것이 목표.
(이 날 동행자인 동생냥의 포스팅에 사진이 있숨- 사진조차 올리지 않는 귀차니즈으음)
목요일마다 내 마음을 뒤틀리게 했던 알바 하나가 끝났다. 얏호! 그곳의 중저음 목소리를 지닌 멋진 까페 청년을 못 보는 거 말고는 일푼의 아쉬움도 없다. 후후. 이제 즐겁게 봄을 즐겨봐야지.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자기가 싫다. 자꾸만 뭐가 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들어와 몇 줄 적어보고 있다. 작년 4월에 있었던 특별한 기억들도 스물스물 나를 자극하고, <개청춘>의 새로운 구성도 머리 속에서 꼬물대는데 그런 중요한 것들을 적기보다는 쓸데없는 것을 적는 나... 위에 쓴 내용들도 뭔가 단락별로 보이지 않는 번호표가 매겨져있는 거 같다. 뭐지? ㅎ
아 몰라. 휴가의 끝을 잡고 싶은 내 마음이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난 휴가보다 더 즐겁게 일할 자신이 있는 걸!(자기 최면;;;)
생각지 않았던, 일종의 '공강시간'이 생겨서 핸드폰을 구경하다가 덜컥 사버렸다. 당장 내야할 돈은 없지만, 할부로 조금씩 돈은 빠져나갈 것이다. 쓸데없는 사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소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나여... 어제와 오늘에 걸쳐 '결혼제국'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이 세대들에게 신자유주의의 함정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앞뒤로 여러가지 맥락이 있지만, 이 뒤에 2-30대 여성을 '한 마디로 바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이라는 우에노씨의 발언도 나온다. 크크. 그 뒤에 노부타씨의 대사 - "정말 인정사정도 없는 노골적인 말투네요." 동의할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오랜만에 킥킥거리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곱씹어볼 내용도 상당하고. 핸드폰 산 얘기가 어쩌다 여기로 왔지? 킁.
뭐 이래저래 해서 엘지텔레콤으로 이동. 번호는 그대로 쓸 수 있다(다행이도) 정든 나의 핸드폰아, 사요나라!
어제는 바다에 다녀왔다. 몇 년만에 아버지와 함께하는 하루짜리 여행. 회를 진탕 먹고, 낮술도 진탕 마셨다. 사진 속에 퉁퉁한 내 얼굴을 보며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외쳤지만 역시 귀찮다. 요즘은 그저 힘주어 걷는 것이 목표.
(이 날 동행자인 동생냥의 포스팅에 사진이 있숨- 사진조차 올리지 않는 귀차니즈으음)
목요일마다 내 마음을 뒤틀리게 했던 알바 하나가 끝났다. 얏호! 그곳의 중저음 목소리를 지닌 멋진 까페 청년을 못 보는 거 말고는 일푼의 아쉬움도 없다. 후후. 이제 즐겁게 봄을 즐겨봐야지.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자기가 싫다. 자꾸만 뭐가 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들어와 몇 줄 적어보고 있다. 작년 4월에 있었던 특별한 기억들도 스물스물 나를 자극하고, <개청춘>의 새로운 구성도 머리 속에서 꼬물대는데 그런 중요한 것들을 적기보다는 쓸데없는 것을 적는 나... 위에 쓴 내용들도 뭔가 단락별로 보이지 않는 번호표가 매겨져있는 거 같다. 뭐지? ㅎ
아 몰라. 휴가의 끝을 잡고 싶은 내 마음이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난 휴가보다 더 즐겁게 일할 자신이 있는 걸!(자기 최면;;;)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수상한 룸메이트2009. 4. 8. 01:10
오늘 해야 했던 모든 일들과 일정을 다 취소하고 하루종일 뒹굴거리다가 룸메를 만나러 모 학교에 갔다. 4월, 한창 벚꽃으로 가득할 그 곳. 초중고 12년에 대학 5년까지, 17년 가까운 시간동안 3월을 기준으로 새해가 시작된 탓에 3월부터 나는 그렇게 죽자사자 술을 마셔댄 건지도 모른다. 봄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혹은 날카로운) 바람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그 바람에 꽃향기를 실어다주기도 하니 야외에서 낮술을 마시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계절이다.
4시즈음 찾은 학교는 북적거렸다. 아직도 바람이 찬 우리집 근처와 다르게 벚꽃이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라일락까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요즘 대학생들은 다 도서관에서 쩔어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잔디밭에 앉아 술이나 커피(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커피 마시는 인구란 찾아볼 수 없었는데 ㅠ)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짜장면도 시켜놓고,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화창한 날에 걸맞게(?) 아사히나 하이네켄을 들고 마시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여럿이 모여 소리지르며 노는 게임종족과 둘셋이서 오붓하게 캔 하나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 유독 소주병을 자랑스레 꺼내놓고 가장 어두운 곳에 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가 내눈에는 가장 돋보였달까.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라고 일본의 모 시인이 오래전 말했다시피
꽃그늘 아래서 술 마시는 그들은 모두다 즐거워 보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어느 한 쪽은 파삭 늙어버린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그 학교 앞 가장 어두침침한 지역의 추어탕 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요즘은 왜그리 추어탕이 먹고 싶은지, 들깨와 산초를 넣어 후루룩 먹고 나면 꽃그늘 아래 부럽지는 않았으나, 이리도 화창한 날에 실내 구석에서 (보기에는) 우중충한 음식에 참이슬 오리지날을 먹는 내가, 조금은 아저씨 같았다.
이 짧은 휴가가 끝나면, 휴가처럼 일하며 남산 자락에 올라 녹두전에 막걸리를 들이키리라,
라고 결심하는 나 역시, 조금 많이 아저씨 같구나.
4시즈음 찾은 학교는 북적거렸다. 아직도 바람이 찬 우리집 근처와 다르게 벚꽃이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라일락까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요즘 대학생들은 다 도서관에서 쩔어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잔디밭에 앉아 술이나 커피(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커피 마시는 인구란 찾아볼 수 없었는데 ㅠ)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짜장면도 시켜놓고,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화창한 날에 걸맞게(?) 아사히나 하이네켄을 들고 마시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여럿이 모여 소리지르며 노는 게임종족과 둘셋이서 오붓하게 캔 하나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 유독 소주병을 자랑스레 꺼내놓고 가장 어두운 곳에 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가 내눈에는 가장 돋보였달까.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라고 일본의 모 시인이 오래전 말했다시피
꽃그늘 아래서 술 마시는 그들은 모두다 즐거워 보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어느 한 쪽은 파삭 늙어버린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그 학교 앞 가장 어두침침한 지역의 추어탕 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요즘은 왜그리 추어탕이 먹고 싶은지, 들깨와 산초를 넣어 후루룩 먹고 나면 꽃그늘 아래 부럽지는 않았으나, 이리도 화창한 날에 실내 구석에서 (보기에는) 우중충한 음식에 참이슬 오리지날을 먹는 내가, 조금은 아저씨 같았다.
이 짧은 휴가가 끝나면, 휴가처럼 일하며 남산 자락에 올라 녹두전에 막걸리를 들이키리라,
라고 결심하는 나 역시, 조금 많이 아저씨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