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결혼제도 +1
어린 나에게 모성의 충격을 던져줬던 '순풍 산부인과'

당시 순풍 산부인과에서 의찬이는 아빠랑 오중이 삼촌이랑 같이 살았다.
그게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도 새삼 신기하지만,
여하튼,

어느 날인가 의찬이 엄마가 아빠를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를 보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마 드라마 안에서 그녀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역할이었던 듯)
의찬 아빠는 아이는 당신이 온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하고, 대신 학교는 알려준다. 멀리서 보라고.

근데 다음날 의찬이 엄마가 다시 아빠를 찾아와 막 운다.
자기는 정말 보면 알 줄 알았는데, 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있어도 내 아이가 보일 줄 알았는데, 누가 의찬인지 모르겠다고 엉엉 운다. 그러면서 이 옷을 한 번만 입혀서 보내달라고 한다. 멀리서 지켜보겠다고.
그 다음날 의찬이는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가고 엄마는 의찬을 본다.

그 에피소드가 아직도 너무 기억에 난다.
TV에서 수없이 말하는 '피가 땡긴다'를 부정한, 첫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때 거의 처음으로, 아- 엄마라는 존재가, 혹은 엄마라는 존재가 가져야할 덕목이라고 얘기되는 많은 것들이 거짓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성이라는 건 본능은 아니구나 하는 거.

이상한 드라마지만, '앨리 맥빌'

케이블 티비를 처음 달았을 때, 프렌즈를 위시해 미국 드라마나 시트콤을 열나 열심히 봤드랬다.
영어 시험 보면 30-40점을 받던 내가 외국인과 대화 같은 걸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탓...;;

여하튼 그 중에 앨리 맥빌이라는 변호사들 나오는 드라마가 하나 있었는데
대체로는 그닥 흥미롭지 않은 연애와 섹스 얘기들이었고
기억에 남는 하나의 에피소드.

그 로펌에는 이쁘고 늘씬한 금발 미녀 변호사가 한 명 있었다.
그녀가 어느날 맡게 된 변호.
그건 육아 때문에 정시에 출퇴근하고 야근을 할 수 없는 한 여성을 해고한 회사를 변호해야 하는 거였다.
미국이 어쨌든 법제도로는 이런저런 보호들이 많이 되어 있는데다가
육아 때문에 해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불법이어서
다른 동료들은 그녀에게 패색이 짙은 재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녀는 이긴다.
그녀는 배심원들에게 이야기한다.
나도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간절했던 욕망을 뒤로 하고 일을 선택했다.
이곳에서 보스가 되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나는 그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에게 내가 내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 내가 아이를 포기했듯이, 그녀도 나와 같은 커리어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뭔가 '정의'롭지는 않았지만, 배심원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수긍한 것처럼 나도 그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여-여 갈등이나 뭐 그런 거라기보다는,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데 낳아야 하는 상황도 싫겠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데 낳을 수 없는 것도 싫다는;; 정리는 잘 안 됐지만 나로서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 거라 나중에 대학에서 세미나 하던 친구들과도 얘기를 나눠 보곤 했다. 엄마들이 늘 배려 받는 상황이 정당한가(모든 곳에서 그렇다기 보다는 '정의'의 측면에서랄까;;) 모두가 자기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늘 그렇듯 결론은 없었지만 고민들을 하게 되기는 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