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변화

take #2008. 1. 15. 01:08
어제 촬영 갔다 오면서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뭐랄까.. 넉살이 좋아졌달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기 전에 나는 냉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듣는 얘기지만..) 혹은 서울깍쟁이 같다거나 새침떼기 같다거나 뭐 대충의 이미지가 그랬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고 친해지면 사람들과 잘 지냈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선 입 닫고 가만히 있기만 했고, 선배들에게 싸가지도 없었고, 후배들에게는 좀 무서운 선배로 보였던 거 같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긴 했어도 혼자 밥을 먹지는 않았고 조금만 혼이 나도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거나 하지도 못했다.

근데 어제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허허 웃으며 놀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카메라를 들었다. 오늘 날 만났던 오래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니가? 니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 하면서 날 비웃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서글서글해지고 넉살도 좋아졌다. 싫은 것에 분노하는 건 여전하지만 티를 덜 내기도 하고 뻔뻔스러워진 면도 있고 혼자 밥도 잘 사 먹고 뭐 여하튼 그렇다.

처음 이 작업의 언저리에 오게 된 건 2004년,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졸업을 앞두고 멍-, 하니 뭘 해야 할지 고민만 하던 나는 '학생 신분으로는 시도해도 덜 쪽팔릴 일'들을 졸업 전에 다 해 두고 싶었고 그래서 평소에 하지않던 각종 도전들을 시작했다. 그 중에는 밤 새 술 먹기 같은게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끔 정말 '시도'라는 걸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는 거였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인데, 내가 당시 활동하던 단체에는 이주센터가 있었고 거기에 누군가가 '이주노동자인터뷰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고 모집 공고를 올려놓았었던 게 시작이었다. 친구들이랑 캠코더 가지고 몇 번 장난쳐본게 전부였던 나는 그냥 막연히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고 '무경험자 참여 가능'이라는 문구에 용기를 얻어서 '혼자' 그곳에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전화를 하던 순간, 아무것도 쓸 게 없던 이력서 같은 걸 쓰던 순간, 그리고 담당자였던 이*** 씨를 만나기 위해 힘들게 4층 계단을 오르던 순간들 모두 다리가 후덜덜 떨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 가장 용기 있던 순간...ㅎㅎ 나 같이 소심한 인간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마땅히 할 일없던 스텝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를 배우고 만들고, 나는 지금 예전보다 훨씬 넉살 좋고 뻔뻔한 인간이 되어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싫지는 않다. 한 번 어떤 끈을 놓아버리고 나니까 살기가 좀 편하기도 하고..ㅎㅎ
이 밤에 이걸 이렇게 주저리 쓸 계획은 아니었는데. 쩝

쓰다보니 이***씨가 보고 싶다. 라**언니도 보고 싶고.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