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침은 아니고 다시 자기에는 늦은 시간.
알루미늄 이중창에 갖힌 집 속에선 새벽 공기같은 걸 맡아볼 순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냄새가 난다. 새벽 냄새-
잠들기 전인 어제는 to do list에 적어놓았던 여섯 개의 일 중에 다섯 개를 해 냈고 조금 지루하고 짜증나는 그치만 또 좋은 사람들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던 한 회의에도 두 시간이나 있어야 했고 또 다른 짤막한 회의는 인도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치뤄졌으며 집에 오는 길 내내 길모어 걸스를 볼 생각에 부풀어있었지만 동행이 있거나 동행이 사라진 순간부터 피곤한 전화가 왔으며 인도 음식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당고개에 내려 오뎅을 사 먹고 집에 와서 뻔뻔하게 삼치 구이와 밥을 먹기도 한
약간 피곤했던 날.
긴장했는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 버렸고
웁스,
밥솥은 예약 시간에 맞춰 밥을 하고 있네. 푸슁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조금씩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매일 조금씩 블로그에 뭔가를 쓰는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머리속에 있는 얘기들을 좀 꺼내 놔야 새 것이 들어 갈 거 같은데.
작년(!!!)보다 조금 더 조급해진 거 같기도 하고 냉정해진거 같기도 하고, 이해의 폭이나 속도가 너무 좁고 느려져서 대체로 모든 일이 지나고 난 후, 혹은 대화가 끝난 한참 후에 잘못들을 깨닫곤 한다. 다른 사람들을 푸쉬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정리하려고 하거나 하는 일들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오늘 짜증나는 회의에서 좀 배웠는데 그 순간에 있었던 분노들이 지나고 나니 다 내게 화살이 돌아왔다. 난 정말 잘 그러는데 말야. 다른 것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좋지 않은 현상.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할 거 같다. 이틀 집중해서 길모어 걸스를 보니까 사람들의 관계란 어찌나 짜증나면서도 아름다운지.
밥 냄새가 마구 퍼지고 있다. 프흡-
난 이 방이 좋다. 이 집에서 이 방을 내 방으로 쓴 적은 없었다. 이 집에 이사왔을 때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휴학을 하면서 집에 왔을 때는 나에게 제일 좋은 방을 내주었었다. 1년 반쯤 지나고 나는 다시 자취생활을 했고, 2년 10개월이 지나고 이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땐 지금 이 방이 내 차지가 됐다. 사실 여기서 오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페인트칠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책상과 책장을 놓았고, 벽에 사진들을 마구 붙여놓고 좋아하는 달력 그림도 걸어놓고 싶었다. 내 씨디들을 새로 칠한 나무 박스에 넣고 잠을 잘 때 종종 방에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게 좋았고 커다랗고 불투명한 유리도 좋았다.
이제 보름 뒤면 난 다시 이 집을 떠난다. 정말 유목민처럼, 난 아직 풀지도 못한 이삿짐을 다시 싸야 한다. 물론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또다른 좋은 시작이 될테지만- 이상하게 슬프다. 같이 페인트칠을 도왔던 부모와 애인이 이 하늘색이 방을 정신병동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했어도 난 이 색깔이 좋았는데. 이사에 단련된 나에게도 공간에 대한 애착이 있었나보다.
2월에 있을 몇 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 생각을 하면 2월이 한 달 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르바이트의 납품이 정말 1월 말에 끝난다면, 3월에 다른 '정기적'인 일들이 시작되기 전에 2월은 참 아름다울 거다. 게다가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설날도 있잖아! 난 아직도(올해는 장담할 순 없지만) 세뱃돈을 받는다. 그래서 아직 설날이 재미있다. 후후
여하튼 2월이 좀더 재미있고 신났으면 좋겠다. fabulous February!!(에이프릴 어법ㅎㅎ)
일단 이른 아침부터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