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이제서야 기획의도

take #2008. 3. 11. 17:57

하루종일 사무실에 처 박혀 자막작업을 한다.
오타를 살피고, 타이밍을 맞추고, 글자 색상과 위치를 정하는 일까지.
누군가 거들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번에 영문 자막과 한글 자막을 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헌데, 촌스러워 보이는 화면 위에 영어 자막이 올라가자 어쩐지 정말 영화제에 나오는 영화 같이 보이기도 한다. 신기해, 하고 중얼거리며 보이는 것에 '때깔'에 대해 다시 갸우뚱하며 생각한다.

자막 창에 글씨를 써 넣을 때마다 자막 창 뒤에 가려져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녀의 얼굴은 나의 할머니를 닮았다. 그녀가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긍정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보다, 나는 그녀가 나의 할머니를 닮아서, 그래서 그녀를 찍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였다. 나의 할머니는. 적어도 나에게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상대에게 아픈 말을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맹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육식동물을 닮았었다, 나의 할머니는. 예전에 천운영 소설 중에 <숨>이었나, 마장동에서 소를 잡던 그와 그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었다. 육식동물 같던 그녀의 눈빛- 혹은 게걸스레 먹어치우던 밥상 위 그녀의 풍경 같은 것들. 나에게 뱉어냈던 말들이 너무 아파서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시간들, 이 지나고 스무살이 조금 넘었던 어느 밤, 그녀의 등뼈를 훑은 적이 있다. 단단한 껍질 같던, 살아있는 것 같지 않던, 잔뜩 휜 채로 굳어져버린 그 뼈를 만지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위해 울었다. 얼음물만큼 차가운 물에 손을 넣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하던 그녀의 손을 보게 된 것도, 지문이 다 닳아버린 손가락을 만져본 것도 그 후였다. 여전히 그녀는 두려운 사람이었지만, 안쓰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팔십이 넘어서까지 시린 물에 손을 담그며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을 못미더워 하는 성격은 아버지가 닮았고, 내가 닮았다.
가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할머니였지만, 이야기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딸의 손을 붙들고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오던 순간의 이야기나 깡통을 주워다가 밥을 한 이야기, 거문도에서 죽었다는 오빠 이야기, 새참을 만들던 이야기, 어릴 적 보던 바닷가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러다 또 가끔은 울기도 했다. 교회를 안 다니는 나 때문에, 일요일에도 일을 한다는 아버지 때문에, 혹은 자신을 미워 한다는 나의 엄마 때문에.
화투를 좋아했다. 머리도 좋고 눈썰미도 좋은 그녀가 다른 일을 배웠다면 아마 장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글을 배우는 것도 겨우 허락했다. 하나님은 그녀를 사랑하셨지만 다른 삶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매일 화투를 친다고 했다. 한증막에서, 집에서. 화투장이 잘 맞으면 환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매서운 눈빛을 갖고 있지만 웃음은 정말 환하다. 얼굴에 예쁘게 웃음 주름이 져 있다.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몇 번 카메라를 들고 그 곳을 찾은 적도 있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에게 상처의 기억이었다. 들추기 싫은 순간들, 이야기 하기 겁나는 것들.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피해갈 수 있었다. 아닌 척, 하며.

이제사 생각해보면 한글 학교에 찾아갔던 순간, 황보출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느낌, 그녀와 카메라를 두고 나누었던 이야기들, 노인미디어교육까지,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그녀를 위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나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른 할머니들과 나누었다. 편집을 마무리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것,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게 아니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뭔가 그런 거 같은데 정말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던 순간들,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요.
나 이렇게 잘 하고 있어요.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가보다. 오래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