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할머니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8. 9. 6. 03:24
할머니 1
오랜만에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있다. 꺼내서 찍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보고 호불호를 결정할 수 있는 디지털에 비해 찍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최근에 만났던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때문에 나도 책상 구석에 쳐박혀 있던 녀석을 꺼낸 것인데, 막상 찍을 거리는 많지 않고 카메라를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그 사람이 연상되어 오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노출계가 고장나 버린 탓에 인간 '뇌출계'를 활용해야 하는데, 사진을 찍은지 오래되다 보니 빛을 보는 것이 영 낯설다. 아직 한 롤을 다 찍지 못해서 인화를 해 보지 못했는데 몇 컷이나 살아남을지 의문.
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대전에 다녀왔다. 여행이 어쩌다보니 추석과 겹치게 되어 미리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었다. 손녀가 사 간 선물을 보고 뭘 이런 걸 사왔냐 하시면서도 먹는 용법과 약효를 꼼꼼히 물으시던 두 분.
예전 같으면 차 타고 오기 힘들었겠다며 한솥 뜨끈한 밥을 지어 놓으셨을 할머니는,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외식에 동의하셨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간 맞추기에 서툴어지시더니 작년 아프고 나신 후에는 이제 식욕도 많이 줄어드신듯 하다. 고봉밥에 남은 반찬을 싹 비우던 그녀였기에, 남은 밥을 보니 그녀가 새삼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골목을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가방에 들어있던 카메라로 꼭 잡은 우리 두 손을 찍고 싶었는데, 렌즈를 통에서 빼내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맞춰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한 손으로는 하기 어려워 사진기를 꺼내지 못했다. 잡은 손도 놓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렇게 손을 잡고 걸었다. 노인의 속도로 길을 걷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늘과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세 블럭 남짓 되는 거리를 쉬엄쉬엄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쭈그리고 앉은 그녀의 사진을 하나 찍었다. 참 작구나. 뷰 파인더 안에, 몸을 오그린 그녀는 참 자그마했다.
할머니, 제가 이번에 추석 때 못 올 거 같아서 미리 들렀어요,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길에 말했다.
그래. 그럴 거 같았어. 그럴 거 같더라. 그래. 우리 뭐 하지도 않는데... 손을 붙잡은 채 허공을 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는 자꾸만 작아지고 자꾸만 약해진다. 무슨 일이든 닥치면 다 해낼 거 같던 나의 할머니. 이제는 기차역까지 우리를 바래다 줄 수 없어졌다. 늙는 것이다. 내가 그녀보다 훨씬 크게 자라난 만큼.
할머니 2
외할머니는 서울에 사신다. 강남에 유명한 어느 동네이고, 집도 크고 넓다. 늘 예쁘게 꾸미시고 다니시는 멋쟁이이시기도 하다. 그 나이대에도 심지어 '이대 나온 여자'라서 옷도 늘 격식을 차려 입고 계셨고, 옆에 가면 늘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는 언제나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옆에서 화를 내고 있는 엄마가 함께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가 좀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난 척을 하시기 때문에 옆에서 엄마는 항상 외할머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에 바빴다. 고등학교 때였나, 엄마가 할머니의 생신 선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날 끼워서 삼대모녀가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패키지 여행이어서 이상한데 많이 돌아다니고 피곤한 일정이었는데, 외할머니가 아들 자랑이었는지 딸 자랑이었는지를 계속 해서 엄마가 미칠듯이 그만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런 기억들 뿐이다.
그녀는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한쪽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부끄러울 정도로 목소리가 컸던 자신의 엄마에게 연민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외할머니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엄뿔'의 고은아 같은데도 있고, 예쁘다는 칭찬, 피부가 곱다는 칭찬을 참 좋아하신다. 뭔가를 볼 때 눈 바로 앞에 바짝 갖다 대야만 보이시는데, 그 모습이 예쁘게 꾸미신 겉모습과 이상하게 대비가 되면서 애처롭게 보인다.
외할머니댁을 혼자 찾은 건 처음이다. 늘 엄마와 함께, 혹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였다. 할머니처럼 애틋한 마음보다는 낯섦이 더 많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늦은 저녁 작은 선물을 들고 찾은 손녀딸을 맞으면서 할머니는 아이처럼 뛰어 다니셨다. '너랑 와인 한 잔 하려고 준비해 놨어'
예쁜 와인 잔 두 개와 동그랑땡, 수박과 오렌지를 얹은 접시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레 위에 놓였다. (이 수레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호텔 룸서비스를 시키면 직원이 밀고 오는 그것과 흡사하게 생긴 것이다.) 와인을 홀짝이며 그녀는 이런 저런 수다를 쏟아냈다. 그녀를 찾아간 내 기분이 이상했던 만큼, 그녀도 갑자기 찾아와 혼자 인사를 하는 다 커버린 손녀딸이 낯설고 이상했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구나, 하며 원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잘 된다고 유명한 점쟁이가 그랬어 라고 깔깔 웃으시는 나름 귀여우신 외할머니.
집을 나서는 길, 면세점에서 뭐 사다 드릴까요 라는 물음에 시슬리 스킨 로션을 주문하신다. 혹시 내가 이름이라도 틀리게 외울까 싶어 '라이트닝' 로션이라고 몇 번씩 강조를 하신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라면 그런 할머니가 싫었겠지만 지금은 귀여우시단 생각이 든다.
손에는 노잣돈도 쥐어 주시고 잘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계속 쓰다듬어 보던 그녀의 투박한 손처럼.
오랜만에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있다. 꺼내서 찍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보고 호불호를 결정할 수 있는 디지털에 비해 찍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최근에 만났던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때문에 나도 책상 구석에 쳐박혀 있던 녀석을 꺼낸 것인데, 막상 찍을 거리는 많지 않고 카메라를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그 사람이 연상되어 오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노출계가 고장나 버린 탓에 인간 '뇌출계'를 활용해야 하는데, 사진을 찍은지 오래되다 보니 빛을 보는 것이 영 낯설다. 아직 한 롤을 다 찍지 못해서 인화를 해 보지 못했는데 몇 컷이나 살아남을지 의문.
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대전에 다녀왔다. 여행이 어쩌다보니 추석과 겹치게 되어 미리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었다. 손녀가 사 간 선물을 보고 뭘 이런 걸 사왔냐 하시면서도 먹는 용법과 약효를 꼼꼼히 물으시던 두 분.
예전 같으면 차 타고 오기 힘들었겠다며 한솥 뜨끈한 밥을 지어 놓으셨을 할머니는,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외식에 동의하셨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간 맞추기에 서툴어지시더니 작년 아프고 나신 후에는 이제 식욕도 많이 줄어드신듯 하다. 고봉밥에 남은 반찬을 싹 비우던 그녀였기에, 남은 밥을 보니 그녀가 새삼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골목을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가방에 들어있던 카메라로 꼭 잡은 우리 두 손을 찍고 싶었는데, 렌즈를 통에서 빼내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맞춰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한 손으로는 하기 어려워 사진기를 꺼내지 못했다. 잡은 손도 놓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렇게 손을 잡고 걸었다. 노인의 속도로 길을 걷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늘과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세 블럭 남짓 되는 거리를 쉬엄쉬엄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쭈그리고 앉은 그녀의 사진을 하나 찍었다. 참 작구나. 뷰 파인더 안에, 몸을 오그린 그녀는 참 자그마했다.
할머니, 제가 이번에 추석 때 못 올 거 같아서 미리 들렀어요,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길에 말했다.
그래. 그럴 거 같았어. 그럴 거 같더라. 그래. 우리 뭐 하지도 않는데... 손을 붙잡은 채 허공을 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는 자꾸만 작아지고 자꾸만 약해진다. 무슨 일이든 닥치면 다 해낼 거 같던 나의 할머니. 이제는 기차역까지 우리를 바래다 줄 수 없어졌다. 늙는 것이다. 내가 그녀보다 훨씬 크게 자라난 만큼.
할머니 2
외할머니는 서울에 사신다. 강남에 유명한 어느 동네이고, 집도 크고 넓다. 늘 예쁘게 꾸미시고 다니시는 멋쟁이이시기도 하다. 그 나이대에도 심지어 '이대 나온 여자'라서 옷도 늘 격식을 차려 입고 계셨고, 옆에 가면 늘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는 언제나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옆에서 화를 내고 있는 엄마가 함께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가 좀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난 척을 하시기 때문에 옆에서 엄마는 항상 외할머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에 바빴다. 고등학교 때였나, 엄마가 할머니의 생신 선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날 끼워서 삼대모녀가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패키지 여행이어서 이상한데 많이 돌아다니고 피곤한 일정이었는데, 외할머니가 아들 자랑이었는지 딸 자랑이었는지를 계속 해서 엄마가 미칠듯이 그만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런 기억들 뿐이다.
그녀는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한쪽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부끄러울 정도로 목소리가 컸던 자신의 엄마에게 연민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외할머니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엄뿔'의 고은아 같은데도 있고, 예쁘다는 칭찬, 피부가 곱다는 칭찬을 참 좋아하신다. 뭔가를 볼 때 눈 바로 앞에 바짝 갖다 대야만 보이시는데, 그 모습이 예쁘게 꾸미신 겉모습과 이상하게 대비가 되면서 애처롭게 보인다.
외할머니댁을 혼자 찾은 건 처음이다. 늘 엄마와 함께, 혹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였다. 할머니처럼 애틋한 마음보다는 낯섦이 더 많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늦은 저녁 작은 선물을 들고 찾은 손녀딸을 맞으면서 할머니는 아이처럼 뛰어 다니셨다. '너랑 와인 한 잔 하려고 준비해 놨어'
예쁜 와인 잔 두 개와 동그랑땡, 수박과 오렌지를 얹은 접시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레 위에 놓였다. (이 수레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호텔 룸서비스를 시키면 직원이 밀고 오는 그것과 흡사하게 생긴 것이다.) 와인을 홀짝이며 그녀는 이런 저런 수다를 쏟아냈다. 그녀를 찾아간 내 기분이 이상했던 만큼, 그녀도 갑자기 찾아와 혼자 인사를 하는 다 커버린 손녀딸이 낯설고 이상했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구나, 하며 원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잘 된다고 유명한 점쟁이가 그랬어 라고 깔깔 웃으시는 나름 귀여우신 외할머니.
집을 나서는 길, 면세점에서 뭐 사다 드릴까요 라는 물음에 시슬리 스킨 로션을 주문하신다. 혹시 내가 이름이라도 틀리게 외울까 싶어 '라이트닝' 로션이라고 몇 번씩 강조를 하신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라면 그런 할머니가 싫었겠지만 지금은 귀여우시단 생각이 든다.
손에는 노잣돈도 쥐어 주시고 잘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계속 쓰다듬어 보던 그녀의 투박한 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