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처음 워낭소리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영화가 불편했다. 재미가 있다, 없다로 말한다면 재미가 있었다. 감동적이라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나오는 할머니가 좋았다. 그 할머니의 말이 재미있었고 할머니가 좋았지만, 그 할머니의 말이 영화 속에서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그런 느낌들이 이어져서 할머니와 소, 할아버지가 다 불쌍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뭐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자막 때문에 좀 열이 받았다. 주인공이 셋인데 왜 헌사는 둘한테 하냐 이거지. 할머니는 뭐냐고.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만들고 있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되겠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간절히 위로받고 싶어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자기가 가진 죄책감들을 쓸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싫었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많았지만, 여러 흐름을 타고 이 영화는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200만을 바라보는 초대박영화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메가가 이 영화를 친히 관람하시면서, 각종 논란을 몰고오고 있기도 하고.

이 영화가 독립영화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냐 아니냐 라는 논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논란은 독립영화나, 독립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입지를 좁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독립영화라서 용서하거나, 독립영화라서 비판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나도 처음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며, (이 영화는 독립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이런 영화가 독립영화라고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면 어쩌나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걸 시작으로 더 많은 영화들을 보고, 독립영화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이 생기면 좋으니까. 정책적 투쟁으로 상영관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메가와 함께 영화를 본 그 퍼포먼스가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고놈은 워낭소리가 가진 어떤 장점들말고, 자기가 필요한 것 - 열심히 일하면 경제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 만 취할 놈이니까, 그런 자리에 가서 구색을 맞춘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를 위해서라면, 더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을 조직해서 단체로 피켓팅을 하든 뭘하든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쫌 너무 변명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 제작자도 싫고 영화도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뻔한 얘기를 뭐하러 늘어놓으냐면,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때론 무지 권력적이라는 것을 오늘 어떤 자리에서 느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쓰일 말이라면 나는 독립영화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져버렸기 때문에. 기억해두고 싶다.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걸로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