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일요일

월화수목금토일2018. 4. 1. 16:06

일요일 아침, 

딩동. 

내복을 입은 채로 아이가 뛰어나가 친구를 맞이한다.

서로의 약속도 없이, 부모들끼리의 합의같은 것도 없이 

그냥 내킬 때 벨을 눌러서 만나는 사이.


'초등학교 친구는 엄마가 만들어준다'는 말에 눌려 아이가 1학년 내내 나 혼자 안절부절했다. (뭘 하지도 못하면서)

내 걱정과 별개로 아이는 조금씩 자기 삶의 반경을 넓혀가더니 

눈물과 싸움과 서운함을 지나 친구들을 만들었다.

나도 이제는 '아이가 속상해할 때 백업군' 정도로 내 포지션을 잡아가고 있고.


내가 이 녀석의 또래였을 때, 우리집은 동네 놀이터였다.

어른들은 없고, 잡동사니가 많고(장난감이 아닌 '진짜'를 가지고 놀 수 있다!), 어질러도 나중에 혼나지 않는 특이한 집(왜냐면 원래 어질러져있어서)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와 엉망이 되어 있는 집을 보고 가슴이 턱턱 막혔을 엄마의 심정은 30대가 되어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일드 '마더'를 보다가 그 예쁜 아이를 학대한 엄마를 이해하게 됐던 장면,

혼자 아이를 키우며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가득 찬 양동이에 물 한 방울 같았던, 엉망인 집과 너무 예쁜 아이... 

겨우 삼십대에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엄마를, 아직도 온전히는 잘 모르겠다. 


아침부터 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점심을 챙겨 먹이고

빨래와 설거지를 마친 뒤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니

영락없는 일요일 주부놀이다. (feat.야구)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요즘의 나에게 실망할 때도 많지만

무언갈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요즘의 나는 참 편안한 거 같다.

하지만 어떤 짜릿함은 '그 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언젠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