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아이를 키운다 1번 글이지만 별로 이어짐은 없는... http://icecat.tistory.com/399


미세먼지가 아무리 많아도 밖에서 노는 걸 포기할 줄 모르는 동목씨는 이번 주말도 내내 밖에서 지냈다.

지지난 주 토요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 양육자 없이 꼬박 하루를 보냈는데,

나름 자기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는지 금요일부터 이것저것 열심히 챙겼다. 나와 파트너가 모두 일하는 사이, 동목이는 사다놓은 샌드위치를 친구와 나눠먹고, 용돈으로 주고 나온 만원짜리를 들고 슈퍼에 가서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쏘며 자유를 만끽한 듯 했다. 

이제 정말 많이 커버렸다. 조금 홀가분하고 조금 아쉬웠다.


금요일이 되자, "엄마, 이번 토요일에도 나 혼자 있어?"라고 눈을 반짝이는 동목.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난 토요일에도 우리는 둘다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아이를 혼자 두고 말았다.

현금이 없어서 체크카드를 주었고, 그 체크카드로 점심을 사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파트너는 샌드위치를 사다놓지 않았고, 토요일 오전에 온다는 가스검침원에게 나는 깜박하고 안된다는 문자를 보내놓지 못했다.

오전 내내 정신이 없어 전화도 문자도 받지 못하고 일을 했는데 12시 넘어 확인해보니 동목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있었다. 

"가스검사 한다는데 검사하게 문 열어줘도 돼"라는 음성메시지... 너무 놀라서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리 해도 받지 않고. 파트너에게 물으니 그도 따로 연락받은 건 없다했다. 그 때부터 한참을 안절부절하며 몇 번이고 연락을 시도했는데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더니만 '배터리 아끼느라고 꺼놨었어'하고 쿨하게 받아치는 녀석. 심지어 가스검침도 할 수 있게 문도 열어주었다 한다. 그리곤 곧 날아오는 결제메시지. 00할인마트 500원, 00할인마트 1500원... (나만 걱정쟁이인거야? 그런 거야?)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엔 과자 예감의 빈 봉지가 굴러다니고.. 


"점심은 안 먹고 과자만 먹었어?"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아무것도 없더라고. 근데 00이한테 뭐라도 대접해야 될 거 같애서 과자 같이 먹었어." (헐!!)

"그리고 가스검침원한테 그냥 문 열어주면 어떡해.. 엄마나 아빠한테 꼭 확인 받았어야지."

"옷에 가스뭐라고 써있던데? 그리고 자꾸 똑똑하고 딩동소리가 거슬려서 그냥 열어줬어." (정말 '거슬린다'라는 단어를 사용함)


여기까진 갑자기 커버린 거 같은 아이 버전. 하지만...


"근데 너 오늘 아이스크림 많이 사먹었더라?"

"(동공지진) 어떻게 알았어? 봤어?"

"아아니~ 엄마는 마법이 있어서 다 알수가 있어."

"에..이. 거짓말이지? 어디서 숨어서 봤지?"

"아냐 마법의 영수증이 있어서 다 아는 거야."

"아니거든... 마법의 영수증은 없는데..."


ㅋㅋㅋ 아직은 아기인 내 아기.

내가 없는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가 밤이면 내 품으로 파고들어 아기인척하는 내 아기...

가끔은 내가 이 아이를 너무 큰 애처럼 대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을 대하듯이 말로 설득하고, 말로 설명하고. 

조금만 더 아이의 시간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훔쳐보겠다는 거 아님....)


오늘은 4월 16일.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날.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마음 아픈 사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감정들은 내 촉감이 되어버린 거 같다.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을 아이를,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른채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들의 마음을 감히 안다고는 못하겠지만

계속 기억하고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