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귀에는 이어폰을 꼽은 채 - 흘러나오는 드렁큰타이거의 애절한 8:45 를 들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으로 한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4호선에서 5호선을 갈아타는 길을 걷다.

5호선 맨 뒤에 타면 광화문에서 바로 계단을 오를 수 있다.
얼마 걷지 않아도 금세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 후, 한산한 플랫폼 맨 뒷자리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한 남자가 있었다.

노랗게 염색을 한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 꽤 큰 덩치에 안경을 꼈고
글씨가 아주 작아보이던 잡지를 읽고 있던 그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기도 했다.

잠시 후 지하철이 도착했고
그가 먼저 올라타길 바라며 살짝 뒤로 물러섰는데
그는 턱 높이가 다른, 열린 지하철 문과 플랫폼 사이를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기관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우리 뒤에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쾅,쾅,쾅
그는 한번더 문을 두드렸고 나는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봤다.
내 시선을 느낀 그의, 문을 두드리던 손은 멋쩍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뀌었고
그 눈빛은 닫혀진 문 밖으로 사라졌다.

오후 내내,
외롭고 슬펐고,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