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작업

take #2007. 11. 14. 04:33
두 가지 작업이 마무리 단계다.
하나는 롯데호텔 해고 룸메이드에 대한 짧은 영상, '우리는 룸메이드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황보出, 세상에 나오다' 이다.

'우리는 룸메이드였다'는
이후 작업을 위한 사전 작업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만든 투쟁영상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마음이 처음 생겼던, 나중에는 잘 기억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투쟁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다큐멘터리의 최고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에 정작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을 때는 나는 노동현장을 기피했다.
할 자신도 없어서였겠지만, 그 때는 '그런 거' 말고 일상적이고 사적인 다큐멘터리, 아니면 발랄하고 가벼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돌고 돌아서 만들고 보니, 다시 처음에 와서 서 있는 기분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지는 못했어도, 욕심이 생긴다.
그녀들의 삶 속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녀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마음.
나만이라도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들이 꿈틀거린다.

'황보出, 세상에 나오다'는
그야말로 돌고 돌아 이제서야 겨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녀석이다.
처음 영상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벌써 2년도 더 된 이야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냥 욕심만 한가득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에 테잎을 넣고 그저 녹화버튼을 눌러대면서 그녀의 삶을 담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카메라를 든 사람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믿고 자신의 삶을 드러낸 사람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찍기만 했다.

촬영한지 1-2년이 된 테잎들 속에 숨어있는 내가 있다.
무슨 얘기를 할 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무작정 카메라를 든 약간은 폭력적인 내가. 거기에 있다.
편집이 힘들었던 것은, 그 테잎들을 1년 동안 들춰보지 못했던 것은
그런 내 모습을 직면하기 싫어서였을 거라고,
이제사 생각한다.
말로는 온갖 '옳은' 이야기들을 해대던 내 입이
그녀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기위해 질문들을 퍼붓는 못된 녀석이 되어 있는 것을,
어디로 갈 줄 모르는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을,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내가 한편으로 기특하면서도 미안하고 아쉽다.
영상을 모니터링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의 말처럼
아쉬운 것이다.
이제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카메라를 들고 담았던 그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교육을 할 때마다 사전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블라블라블라- 그렇게 떠들면서도
정작 나는 얼마나,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깨닫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놓고는 책임감없이 테잎을 버려두고 있었던 기간들을 떠올리면서 얼마전 열을 올렸던 세미나의 '다큐멘터리에서의 윤리성'을 생각한다.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일임을 알고 있다.
이 반성들이 이후에 나를 더 성장시켜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나에게 기대치가 높은 인간이므로, 또 나를 자학하면서 더 나아지려 노력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쉽고 고맙다.
이 하찮고 한심한 나를 믿고 이야기를 건네 준 그녀들에게,
성글고 거친 테잎들을 보면서도 애정있는 조언을 해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구나.
제 아무리 잘났다해도 절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거구나,
기고만장한 나에게 그것들을 깨우쳐주는 내 일이 고맙다.

내 타로점의 답변처럼
내 작업이 나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오래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