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반이다

take #2007. 11. 24. 02:52
비가 왔다.
오늘 반이다 친구들과 촬영을 하기로 했었는데
비오는 겸, 그냥 회의하고 술 한잔 하기로 했다.
노곤해진 마음에 늦잠을 잤고
느즈막히 나와 수다판인 회의를 하고
번개가 번쩍번쩍, 천둥이 쾅쾅치는 저녁에 친구들과 우리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수다를 한참이나 떨었다.
술 먹겠다고 한 상 가득 안주를 차려놓고
윤도현 러브레터에 나온 이선균을 침 흘리며 보다가
영화 한 편 보며 술 먹자 했는데
요 년들, 영화 틀자마자 드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잔다.

우리들 삶이 참 피곤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왜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 생각할까.
피곤한 이 삶을 헤쳐나가느라 우리들은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한다.
일이 재미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나를 포함한) 그녀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서울에 방 한 칸에 월세를 내기에도 충분히 바쁘다.
피곤하고 불안한 20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우리도 결국 피곤하고 불안한 20대인 것이다.

가끔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 읽은 야마다 에이미의 단편집 중에는 운명이란 결국 내가 바꿀 수 없으니 인생에 초연한 꼬마 아가씨가 나왔다.
바다에 빠질 운명인 사람이라면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겠냐며.
나도 내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빙빙 돌아가면서도 어차피 내가 생각했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다큐멘터리는 참 어렵다.
등장하는 누군가의 삶을 드러내는 것도
그 이야기를 하는 내가 드러나는 것도
참 어렵고 쪽팔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도 웃으며 여러가지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아마 다들 마음 속에는 그런 두려움들도 있을 것이다.

잘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피곤함도 두려움도 편견도, 다.
그녀들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물론 불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ㅋ)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세상을 꿈꾸며,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동갑내기들을 만나기란 쉬운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옆 책상에 앉아 상사에 대한 욕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카메라를 들고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음이 좋다.
비록 나의 페이버릿 무비인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다 잠들어버리는 두 녀인이지만
어쨌든 매력녀들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후후.

앞으로 우리의 반이다는 어찌 될 것인가!
기대 반, 호기심 반, 두려움 조금.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가야지.

그나저나 얘들아- 난 안 졸리다굿.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