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이 밤에 졸린데 잘 수가 없다.
할 일 모두 미루고 일찍 자야지 하며 뒹굴뒹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질이나 하였건만!
잘 수가 없다.
왜냐하면 12시 넘어 라면을 처 먹었기 때문이다.
속이 막 더부룩하다.
라면을 손수 끓여주신 어머니는 이 글을 보면 좌절하겠지만 여하튼 상태 뷁.

아까 라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봤다.
나는 5월부터 대략 육고기를 단식하는 방법으로 채식지향주의적 식사를 하고 있다.
매년 시도했지만 늘 실패하고 말았던 채식지향은
5월에 한약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단절되었던 몇 가지 고기류와 술 덕분에 꽤나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다.
마침 그 시기에 '프랑켄슈타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를 읽었고
채식과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을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왜 채식을 하는 지를 물을 때 대답할 거리를 준비하곤 했다.
뭐 별로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부끄러운 자리였기 때문에 진지하게 말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만.
그 고민들은 내 본성(?)과 혹은 나의 소샬 포지션(?) 등과 여러 번 부딪히곤 했다.

채식지향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때때로 불편했다.
몇몇 친구들은 일부러 나를 배려해서 고기가 없는 식단을 선택했는데
원래 밥 먹을 때 결정권 같은 거 가지는 걸 싫어하는 나는 그 과정이 때로 부담스러웠다.
은근 말도 안 되는 착한 여자 컴플렉스 같은 게 작동하여 '나 때문에' 어떤 선택이 영향을 받는 것이 미안하다는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괜찮으니 아무데나 가자고 한 적도 많다. 물론 착한 동료들은 그런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고기가 없는 식당을 가곤 했지만.

또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음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채식지향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본주의적 식사에 대한 거부권 행사이다. 예를 들면 자본이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은 음식을 -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같은, 물론 이 사회에 그렇지 않은 음식이란 별로 없겠지만 - 먹지 않을 선택권을 내가 쥘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그런 음식을 거부하고 최대한 내가 음식을 생산하는 경우 매우 유효한 선택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김밥을 먹는다고 하면.
여럿이 같이 먹기 위해 천원짜리 김밥을 사왔을 경우 나는 종종 햄을 빼고 김밥을 먹는 이상한 '편식'의 행태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식사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요, 생산적 채식 지향의 태도도 아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이런 상황에 많이 부딪히게 된다. 야채카레를 시켰는데 이미 카레 소스안에 고기가 들어 있는 경우나 국물요리에도 이미 고기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마나 나의 선택은 늘 '편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채식지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런 식사를 할 때마다 갸우뚱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식사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아직은. 급급.

그리고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맛대맛 같은 거 보면서 료리 연구하고 저거 한 번 만들어 먹어보자 하면서 흥미로워했는데, 얼마 전에 그 비슷한 어떤 프로그램을 보다가는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해산물과 생선 등으로 만드는 음식에 관한 리포트였는데 살아있는 생물들이 그저 '음식 재료'로서 배가 갈리고 산 채로 튀겨지는 행위들이 너무나 즐겁게 티비에 나오고 있었다. 예전에는 나도 그것을 그냥 음식의 일부로 보고 오호라, 했겠지만 그걸 보던 순간에는 정말 불편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음식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또 책에서 여성성을 가진 동물의 이중학대라는 부분을 보면서 달걀과 우유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젖을 짜내고 알을 낳는 것이 노동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좀 끔찍해졌달까. 그래도 여전히 달걀은 잘 쳐 먹지만-_-
뭐 이런저런 고민들 끝에...

방금 라면을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사실 라면을 먹은 건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정말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는데
이건 매우 자본주의적 소비행태인 것이다. 소비를 위한 소비.(게다가 라면 국물은 다량의 동물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번에 애인님과 나의 채식지향 식사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대량 생산되는 음식을 거부하는 차원에서 채식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라면은 대량 생산의 대표님이시다.
거기다 그 간편함 때문에 더욱 더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따위는 없으니까.
결국 라면을 끊어야 하는 것인가.


정말 쓸데없이 긴 글이다.
다 배가 더부룩한 탓이다.

오밀조밀한 고민들이 더 필요하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자본주의 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