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몇 달간 시끌거리던 대선이 드디어 끝났다.
누군가의 말처럼 누가되든 뭐 그리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안 됐음 싶은 마음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다.

아침부터 4시간의 힘든 촬영을 마치고 인천에서 집으로 가는 길
투표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졸립기도 엄청 졸립고, 며칠 집에 안 들어간 짐에, 카메라에 삼각대에, 얇은 옷, 추레한 몰골 등은
사람들로 벅적거릴 것이 뻔한 시내에 가기 싫은 여러가지 요인이었지만
촬영이라도 하자, 하는 굳고도 훌륭한 마음으로 선거 장소에서 내렸다.
투표용지를 받아들고도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할지
정말 용기있게 너네 다 싫다- 하고 짱돌을 들자- 라도 적어놓고 나와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약해진 마음에 '비난적 지지'를 택하고 말았다.
투표율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았던 오늘,
대학로 거리는 젊은 인파들로 넘쳐났고
나는 종종 들르는 커피숍에서 잠깐 잠을 청했다. 마음이 피곤했다.

이번 선거는 평가의 선거다.
앞으로 잘 할 후보를 뽑는다기 보다 지금까지의 정권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에 대한 평가.
그 평가의 날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으로 표시됐다는 것은 안습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질려버린 것이다.
나름대로 진보쪽에 기울어 있었던 서울조차 50%가 넘는 지지를 이명박에게 바친 것을 보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은 40%가 넘었다.
예전에 비폭력 대화 워크샵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얘기는 수단을 나의 욕구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돈은 수단이고, 그 돈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근본적인 욕구다. 돈은 방에 쌓아놓고 싶은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생활 할 수 있고, 여유있게 웃을 수 있고, 뭔가 배울 수 있는 내 삶을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그 이름도 지겨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돈을 목적으로 만드는데 너무나 주력하고 있고, 그게 우리에게도 꽤나 먹혀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선거다.

정동영은 그래도 30% 가까운 득표를 했으니 또 당을 차리네 어쩌네 특검을 해서 재수사를 하고 재선거를 하네 어쩌네 나리를 칠테지.
권영길, 그 3%도 안 되는 지지율이 그에게 향한 것도 아니요, 민노당 자체를 향한 것도 아닌  '비난적 지지'라는 데에도 반성해야 할 거다.
1%도 안 나온 이인제는 이제 제발 닥치고 꺼져야 할 거고
문국현은 그 정도 지지율 가지고 당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정당정치 자체를 다 없애버리겠다던 허경영은 뭘 할지- 유일하게 궁금한 후보.

오늘 투표소 앞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한참 찍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투표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 종로구였지만
그래도 대충 잠바 입고 츄리닝 입고 나온 사람들이 어째 좀 너무 훈늉한 거 같아서 ㅎ

여하튼 끝났으니 이제 뉴스 끄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