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10월의 책

골방/서재2007. 11. 10. 00:08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는

best friend

지식 채널 e

다큐멘터리 입문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전경린 여행에세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늘 이런 꿈을 꾸었었다. 어디든, 어디든 가서 한 달만, 아무도 모르게 아무 일거리도 없이 이방인으로 거의 버림받다시피 쉬어봤으면..... 버림받다시피라는 부분이 중요하다.무력한 자유를 좋아했었다. p11

그러고 보면 모든 운명은 이렇게 가볍게, 내부로부터 말리는 기분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p13


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삶은 애욕과 노동이거나 애욕의 노동. p 17



... 삶 속에서 나는 마음보다, 말보다, 오히려 몸을 통해 그때그때의 진실을 확인해 왔다. 내 몸은 이 곳에 있다. 내 진실도  p27
네팔어로는 히마와 알리아의 합성어. 눈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눈이 머무는 그곳 히말라야 중앙 지대에는 거대한 설인 예티가 눈 위에 발자국을 쿵쿵 찍고 눈바람을 일으키며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p 31
그 날 오후엔 내내 호텔의 옥상 정원에서 보낼 작정으로 뜨거운 커피와 쿠키, 포근한 양털 파쉬미나와 책을 들고 올라갔다. p52
실은 나는 열심히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반쯤 열린 손아귀와 방심한 눈빛..... 열심히 사는 것조차 때로 탐욕으로 느껴지고, 승화할 수 없는 맹목적이고 지상 위의 것에 불과한 열심은 모멸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통의 7할 이상은 현실 때문에 생겨나고 언제나 현실에 눌려 허덕이는 꼴이니, 이제는 삶에 승복하고 현실을 돌보아야 할텐데....  p71
어떤 여자에겐 이 세상이 어떤 형태로든 감옥이다. 벗어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써보았지만, 거듭거듭 탈주를 감행했었지만... p93
살아지지가 않아요. 정말 살아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내가 전원을 꽂고 살아 주는 가전제품 같기만 해요. 세탁기처럼, 냉장고처럼... 그래, 이러면 되니? 이렇게 살아주면 돼? 얼마나 나빠지면 좀 놀래기라도 할래? 여자들의 탄식 소리가 떠오른다. 우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개미처럼 끊임없이 삶의 틀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삶은 어디로 빠져나가 버리고 껍질만 이렇게 수북할까..... p106
옛날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신은 사람들의 생애마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언제 이루어지든 꼭 그렇게 된다고. 그러니 사람마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소원을 늘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한다고. 죽음의 문턱을 지나갈 때까지도..... p121
제대로 산다는 건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놓치지 않는 거야. 설혹 나쁜 시간이라 해도 그건 좋은 것을 선택한 것 못지 않은 의미가 있어. 삶의 시간은 똑같이 삶의 기회니까.
삶에 대한 식욕이 너무나 열렬하게 솟구쳐서 돌아가면 어떤 현재라 해도 생선 살을 발라 먹듯 살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 맹렬이 살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모든 시간들을. p148
모든 언어는 주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옴마니 반메훔이나 남묘호랭객교 같은 진언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뜻을 이루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고, 금강경은 외우는 것만으로도 도를 얻는다. 심지어 그 범위는 모든 언어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저마다의 주문이 있을 법도 하다. p197
여행과 삶은 참 닮아서 심지어 두려워하면서도 단념할 수 없는 것이다. p202
 "여보게 경허, 나는 파전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또 그만이라네. 자네는 어떤가?"
"나는 차전이 먹고 싶으면, 장에 가서 파씨를 구해다가 땅을 갈아 파 씨를 뿌리고 한철을 키워서 파가 자라면 밀가루와 잘 버무려서 이렇게 맛나게 부쳐 먹는다네."
그러자 스님은 경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p206
헤어졌다 해도, 이 이별은 한동안 허사일 것이다. 국경 호텔에 홀로 누워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채 그를 그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매력이란 같은 양의 혐오를 숨기고 있다는 말은 옳다. 그래서 이렇게 헤여져 있는 것이다. p 219
아마도 나의 결핍은 분명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로 말하면 모든 준비된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체질이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가난이나, 고독, 불행 같은 것도 다분히 자기 도취적인 것이고 무의식적인 추구이며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선택행위가 아닐까.... p234
평범한 남자의 말대로 사물과 돈은 쫀쫀한 사람에게 오래 머문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러부터 오래 배려하는 사랑을 해 온 사람의 노하우를 본다. 진중한 정성에다 적절한 수위의 희생심과 오랜 노하우를 더한 감동적인 쫀쫀 배려의 위대성. p 241

지금에야 깨달은 진실이지만, 삶에서 이런 저런 상황이나 조건이란 그저 요리의 재료 같은 것이다. 재료 하나가 빠졌다거나, 부실하다고 해서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p253

사람의 정신 연령은 대부분 열두 살이라고 한다. 많아 봐야 열여섯 살이라고. 그 위엔 노화이고 삶의 기술이라고.
존재하는 것들 모두 애틋하다. p256
 여행은 가장 확실하게 액땜을 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p 265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 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p26
영화 속의 대사들을 따라하면서 마틴은 크로스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크로스는 웃으면서 마틴을 피했다. 만약 내 목을 졸려 한다면 허락해 줄 생각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p89
당시 남자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로맨틱한 관심이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남자들에 대해 달리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했다는 것을 . 나도 전교생 앞에서 학장에게 농담을 하고, 그의 별명을 부르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설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는 오만한 남자애가 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p112
매일 메뉴판을 새로 인쇄한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동안 부정해 왔지만 나는 돈이 인생을 훨씬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는 것, 물욕 때문이 아니라 안락함 때문에 돈을 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있으면 딸과 딸의 친구들을 위해 리무진을 보내 줄 수 있고, 예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뚱뚱하지만 멋진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엄마의 친구 중에도 맥스웰 부인만큼 뚱뚱한 아줌마가 있지만 늘 헐렁한 바지에 작업복 같은 것을 걸치고 다녔다. -p157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보아도 상관없는 이런 모습이 좋았다. 내가 열한 살 때, 엄마가 남동생 팀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서 내 마음껏 돌아다니다 들어와도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같은 학년 남자애들이나 이웃 사람들이 내 모습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모두들 나의 어른스러움에 놀라 날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동생을 돌볼 줄 아는 어른스러운 아니니까 말이다. -p198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조금 더 원하는 것도 있고, 덜 원하는 것도 있었으며, 끝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계속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별다른 의견이 없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나를 방관자라고 말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 돌아가면 반드시 사전을 뒤져서 그 뜻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p242
나는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 보다 더한 슬픔은 없는 것처럼 - p247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와 어울리고 싶어해야 하고, 상대방의 성의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내가 그들에게 방해가 될 거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게 뭐 그렇게 대수일까? -p258
그날 특강을 했던 무용가는 훗날 더 유명해졌고, 그녀의 무용단은 인종적 특수성 때문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나는 잡지에서 정지적으로 그 무용가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나는 신준이 약을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처럼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모르는 상태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p308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심각한 사건들을 나는 항상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건들이 생각처럼 크고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겨드랑이가 간지러우면 긁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 감상적이고, 마치 멜로드라마 대사처럼 들린다.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난다. 말하자면 생각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p311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제대로 대할 줄 알게 된다. 조금 계산적으로 들릴지 몰겠지만, 나는 내가 그런 시험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한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이 공평한 게 아닐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연습용이었던 적이 있을 테니까. - p361

무언가를 원하고 드러내 놓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얼트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내게 남아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빠가 내게 취업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열정이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었던가?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었던가? 열정은 탐욕, 결핍과 동의어가 아니었던가? 나는 일자리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취업 면접을 보러 그 자리에 나타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면접관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p366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매번 처음처럼 수줍어했던 것은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증거가 필요했다. 그가 이곳에 있고 싶어한다는, 그리고 나를 만지고 싶어한다는. -p 456
나는 크로스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크로스가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이를테면 피스타치오나 모자 달린 티셔츠, '북방에서 온 소녀'라는 밥 딜런의 노래 같은 것들을 통해서 그가 나를 떠올려 주기를 원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그가 나를 그리워해 주기를 원했다.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크로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이기를 원했다. -p443
술에 취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술에 취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의식이 또렷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날 숙취 상태로 깨어나 보면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술에 취했었는지 알게 된다. -p495

읽고 나서 어딘가 들킨 기분과 이상한 공감대 때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던 건 난 크로스가 당연히 흑인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백인 남자는 섹시하지 않다는 나의 편견이 또다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쯧쯧

나는 불행히도 그녀를 안다.
그래서 사실은 그녀의 글을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그녀의 인생을 읽는다.
그녀가 겪어 온 세월을 엿본다.
나는 그녀의 글이 가져다 주는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그 글에 실린 그녀의 인생의 무게 때문인지 모르고
자꾸만 운다.

그래도 참 축하해 주고 싶다.
너무나 오랜 세월 하고 싶었던 일,
그녀의 힘든 세월에 힘이 되어주었던 일,
그 일부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게 돼서. 정말 많이 축하해 주고 싶다.


20년 글의 묶음이 한 권에 나왔다고,
창피하다고, 그랬다.
그건 그녀가 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라는 것을 안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 무게가 그녀의 글을 더욱 반짝거리게 해 줄거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낙원장이라는 단편이 참 좋다.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는.
책도 많이 팔렸음 좋겠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