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수상한 룸메이트2009. 4. 8. 01:10
오늘 해야 했던 모든 일들과 일정을 다 취소하고 하루종일 뒹굴거리다가 룸메를 만나러 모 학교에 갔다. 4월, 한창 벚꽃으로 가득할 그 곳. 초중고 12년에 대학 5년까지, 17년 가까운 시간동안 3월을 기준으로 새해가 시작된 탓에 3월부터 나는 그렇게 죽자사자 술을 마셔댄 건지도 모른다. 봄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혹은 날카로운) 바람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그 바람에 꽃향기를 실어다주기도 하니 야외에서 낮술을 마시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계절이다.
4시즈음 찾은 학교는 북적거렸다. 아직도 바람이 찬 우리집 근처와 다르게 벚꽃이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라일락까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요즘 대학생들은 다 도서관에서 쩔어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잔디밭에 앉아 술이나 커피(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커피 마시는 인구란 찾아볼 수 없었는데 ㅠ)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짜장면도 시켜놓고,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화창한 날에 걸맞게(?) 아사히나 하이네켄을 들고 마시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여럿이 모여 소리지르며 노는 게임종족과 둘셋이서 오붓하게 캔 하나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 유독 소주병을 자랑스레 꺼내놓고 가장 어두운 곳에 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가 내눈에는 가장 돋보였달까.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라고 일본의 모 시인이 오래전 말했다시피
꽃그늘 아래서 술 마시는 그들은 모두다 즐거워 보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어느 한 쪽은 파삭 늙어버린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그 학교 앞 가장 어두침침한 지역의 추어탕 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요즘은 왜그리 추어탕이 먹고 싶은지, 들깨와 산초를 넣어 후루룩 먹고 나면 꽃그늘 아래 부럽지는 않았으나, 이리도 화창한 날에 실내 구석에서 (보기에는) 우중충한 음식에 참이슬 오리지날을 먹는 내가, 조금은 아저씨 같았다.
이 짧은 휴가가 끝나면, 휴가처럼 일하며 남산 자락에 올라 녹두전에 막걸리를 들이키리라,
라고 결심하는 나 역시, 조금 많이 아저씨 같구나.
4시즈음 찾은 학교는 북적거렸다. 아직도 바람이 찬 우리집 근처와 다르게 벚꽃이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라일락까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요즘 대학생들은 다 도서관에서 쩔어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잔디밭에 앉아 술이나 커피(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커피 마시는 인구란 찾아볼 수 없었는데 ㅠ)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짜장면도 시켜놓고,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화창한 날에 걸맞게(?) 아사히나 하이네켄을 들고 마시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여럿이 모여 소리지르며 노는 게임종족과 둘셋이서 오붓하게 캔 하나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 유독 소주병을 자랑스레 꺼내놓고 가장 어두운 곳에 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가 내눈에는 가장 돋보였달까.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라고 일본의 모 시인이 오래전 말했다시피
꽃그늘 아래서 술 마시는 그들은 모두다 즐거워 보였다.
몸인지 마음인지 어느 한 쪽은 파삭 늙어버린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그 학교 앞 가장 어두침침한 지역의 추어탕 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요즘은 왜그리 추어탕이 먹고 싶은지, 들깨와 산초를 넣어 후루룩 먹고 나면 꽃그늘 아래 부럽지는 않았으나, 이리도 화창한 날에 실내 구석에서 (보기에는) 우중충한 음식에 참이슬 오리지날을 먹는 내가, 조금은 아저씨 같았다.
이 짧은 휴가가 끝나면, 휴가처럼 일하며 남산 자락에 올라 녹두전에 막걸리를 들이키리라,
라고 결심하는 나 역시, 조금 많이 아저씨 같구나.
경멸의 눈빛보다 야멸찬 것은 없다, 고 얼마전 비공개 글을 썼다. 그 한 줄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할 만큼 그날은 속상했다. 그런 눈빛은 어째서 감춰지지 않는가, 상대를 원망해보기도 하고, 언젠가 나 역시 들켜버렸을 그 눈빛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마음은 다스려지겠지만 그 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거 같다. 예전과 똑같아질 순 없겠지.
사람이 습관이 정말 무서운게, 아니 익숙하다는 게 정말 무서운게,
한창 술을 곯아떨어질 때까지 퍼부으며 마시던 사람들을 만나니, 그 때처럼 마시게 된다. 그리고 몸도 그 때 같이, 소주를 족히 열댓병을 넘게 비우고도 멀쩡하다. 지껄이지 않아도 될 말을 지껄이고, 몇년도 더 된 얘기들을 하고 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회사 나갈 사람을 새벽 4시에 불러내 술을 마셨다. 다들 조금씩은 달라졌고, 할 수 없는 얘기들도 생기고, 혹은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생겼지만, 하루를 그냥 4년 전으로 다녀온 거 같은 기분. 요 며칠 정말 죽어라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딱 그만큼의 날이었다. (그들과 섹스 얘기를 그렇게 심도 깊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ㅎ) 꼬장을 부려도 별로 창피하지 않았을 법한 멤버였는데, 어찌나 필름도 안 끊기도 멀쩡한지, 기특도 하지. 그래도 거의 몇 년만에 이렇게 마셨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려주었다. 책도 읽고 아내의 유혹도 보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지만, 내일부턴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로(과연;;).
수키랑 같이 산지 이제 다섯달쯤 돼간다. 요즘은 내가 이 녀석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고, 여하튼 그런 어떤 일들에도, 이 녀석을 안고 5분만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제 고양이의 온도는 사람보다 1-2도 정도 따뜻해서 실제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ㅎ) 이전에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도 또 다른 거 같다. 이것도 나이먹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구는 애 낳을 때가 되어 그런다고도 하던데; ) 한참 안고 있으면 답답해지는지 내 빰을 후려갈기고 가버린다. 뭐, 그래도 좋아. 私は すきが すきです。
짤방은 쥐 인형을 잡으려 점프 중인 수키씨의 매혹적 뒷다리;
사람이 습관이 정말 무서운게, 아니 익숙하다는 게 정말 무서운게,
한창 술을 곯아떨어질 때까지 퍼부으며 마시던 사람들을 만나니, 그 때처럼 마시게 된다. 그리고 몸도 그 때 같이, 소주를 족히 열댓병을 넘게 비우고도 멀쩡하다. 지껄이지 않아도 될 말을 지껄이고, 몇년도 더 된 얘기들을 하고 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회사 나갈 사람을 새벽 4시에 불러내 술을 마셨다. 다들 조금씩은 달라졌고, 할 수 없는 얘기들도 생기고, 혹은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생겼지만, 하루를 그냥 4년 전으로 다녀온 거 같은 기분. 요 며칠 정말 죽어라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딱 그만큼의 날이었다. (그들과 섹스 얘기를 그렇게 심도 깊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ㅎ) 꼬장을 부려도 별로 창피하지 않았을 법한 멤버였는데, 어찌나 필름도 안 끊기도 멀쩡한지, 기특도 하지. 그래도 거의 몇 년만에 이렇게 마셨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려주었다. 책도 읽고 아내의 유혹도 보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지만, 내일부턴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로(과연;;).
수키랑 같이 산지 이제 다섯달쯤 돼간다. 요즘은 내가 이 녀석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고, 여하튼 그런 어떤 일들에도, 이 녀석을 안고 5분만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제 고양이의 온도는 사람보다 1-2도 정도 따뜻해서 실제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ㅎ) 이전에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도 또 다른 거 같다. 이것도 나이먹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구는 애 낳을 때가 되어 그런다고도 하던데; ) 한참 안고 있으면 답답해지는지 내 빰을 후려갈기고 가버린다. 뭐, 그래도 좋아. 私は すきが すきです。
아부지와 전화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7. 11. 21. 03:30
어제였나, 그제였나
동생이 갑자기 그런 얘기를 했다.
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다 모르겠지 않나?
나도 뜬금없이 이야기 한다.
근데 난 정말 모르겠어. 알까 싶은 순간에도 아닌 거 같아.
그녀의 대답을 듣고 생각해봤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타인을 이리저리 분석해보기 좋아하는 나로선
아빠에 대한 분석을 수천번도 넘게 더 해 봤지만
그래, 사실 어떤 순간에 그는 놀라워서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은 참 알기 어려운 존재다.
요즈음에 아빠는 외로운 거 같다가도 아니고 주눅든 거 같다가도 아니고 젊어진 거 같다가도 늙어보인다. 나이가 들었으니 늙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역시,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의 늙음은 이상한 상실감을 가져온다.
아빠는 거의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한다.
집에는 들어갔나, 밥은 먹었나
이게 주요한 통화내용이긴 하지만 내 핸드폰에는 그의 젊어보이는 사진과 함께 매일 '아부지'라는 글자가 뜬다.
오늘은 술을 얼큰하게 드시고 전화.
어디냐, 일은 잘 되나, 밥은 먹었나, 로 이어지던 통화는
금의환향하여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는 막내 삼촌 이야기로 옮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대전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할머니와 함께 공항에 나온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이 되신다.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고생하셨겠다, 추운데 올라오시느라고. 그래도 막내 보시겠다고 올라오셨네.
아빠가 말한다.
아빠보다 삼촌이 더 낫지?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도 하고.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우셨겠지?
그러셨겠지, 아빠도 얼른 할아버지 자랑스러워 하실 일 하나 만들어야겠다!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의 아빠가 웃는다.
얌마, 아빠는 존재 자체로도 자랑스러운 거야. 흐흐
아이구 그러셔.
나도 웃는다.
아빠가 그 농을 하면서 마음 한 켠이 아프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는 흐흐 웃는다.
서울엔 언제 오냐.
내일이나 모레.
그래 밥 잘 챙겨먹고, 추운데 조심하고.
응.
전화를 끊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역시 사람이란 알 수가 없어, 중얼거리며.
관련글 기잉의 고맙긴, 미안하지 아빠
동생이 갑자기 그런 얘기를 했다.
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다 모르겠지 않나?
나도 뜬금없이 이야기 한다.
근데 난 정말 모르겠어. 알까 싶은 순간에도 아닌 거 같아.
그녀의 대답을 듣고 생각해봤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타인을 이리저리 분석해보기 좋아하는 나로선
아빠에 대한 분석을 수천번도 넘게 더 해 봤지만
그래, 사실 어떤 순간에 그는 놀라워서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은 참 알기 어려운 존재다.
요즈음에 아빠는 외로운 거 같다가도 아니고 주눅든 거 같다가도 아니고 젊어진 거 같다가도 늙어보인다. 나이가 들었으니 늙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역시,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의 늙음은 이상한 상실감을 가져온다.
아빠는 거의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한다.
집에는 들어갔나, 밥은 먹었나
이게 주요한 통화내용이긴 하지만 내 핸드폰에는 그의 젊어보이는 사진과 함께 매일 '아부지'라는 글자가 뜬다.
오늘은 술을 얼큰하게 드시고 전화.
어디냐, 일은 잘 되나, 밥은 먹었나, 로 이어지던 통화는
금의환향하여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는 막내 삼촌 이야기로 옮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대전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할머니와 함께 공항에 나온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이 되신다.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고생하셨겠다, 추운데 올라오시느라고. 그래도 막내 보시겠다고 올라오셨네.
아빠가 말한다.
아빠보다 삼촌이 더 낫지?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도 하고.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우셨겠지?
그러셨겠지, 아빠도 얼른 할아버지 자랑스러워 하실 일 하나 만들어야겠다!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의 아빠가 웃는다.
얌마, 아빠는 존재 자체로도 자랑스러운 거야. 흐흐
아이구 그러셔.
나도 웃는다.
아빠가 그 농을 하면서 마음 한 켠이 아프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는 흐흐 웃는다.
서울엔 언제 오냐.
내일이나 모레.
그래 밥 잘 챙겨먹고, 추운데 조심하고.
응.
전화를 끊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역시 사람이란 알 수가 없어, 중얼거리며.
관련글 기잉의 고맙긴, 미안하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