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낙서
배우. 안성기. 주름. 잘 짜여진 이야기. 늙음. 동지. 믿음. 적재적소 음악. 공동체 라디오. 뻔해. 행복한 착한 영화. 오래오래 같이


공짜 티켓 놓칠까 아까워서 오랜만에 본 영화.
뭐 뻔한 이야기인지 알면서도 질질 짜다가
집에 오던 길에 끄적거려놓았던 단어들.

예전엔 이런 영화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들을 끝까지 착하게 배려하는,
모두가 행복해졌어요, 하는 영화들.
영화 속에서라도 판타지를 보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웃으면서 극장을 나오게 하는 영화들이 좋았다.
그 때의 내가 순진했던 건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너무 현실에 지쳐버린건지
이젠 이런 영화가 너무 착해서 싫다.

잘 만들어 놓은 추석 특집극 같은 느낌에 영화였다.
전체 줄기보다 잔가지들이 재미있었고,
(특히나 노브레인의 '이스트리버' 쵝오!)
편하게 웃을 수 있었고
이야기는 너무나 전형적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익숙했던 얘기.

영화의 매력은 두 배우.
실제와 영화 속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형성한다.
특히나 안성기는 정말.. 좋더라.
난 이 영화가 꼭 안성기를 위한 영화 같았다.
사실 영화 자체는 기대 이하였는데 안성기를 보고 있으니 참 마음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백 점을 주고 싶은 그런 마음? ㅋ
안성기는 좋은 배우라기보단 좋은 사람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 영화는 교묘하게 그 사이에서 안성기의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먹고 들어가면서
그를 좋은 배우로도 보이게 해주는 것 같다.(적어도 나에게는 말야)
안성기가 맡은 매니저 역할이 어딘가 어벙해 보이면서도
최곤한테는 어린애 달래는 품 넓은 아버지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어딘가 구질구질해 보이기도 하고
부인 앞에선 불쌍한 듯 얄밉기도 한데
그게 마치 '박민수'가 아니라 안성기 같아서 이해도를 높여줬다고나 할까~ ㅎㅎ
(여하튼 부인한테 애 키우고 돈 버는 거 다 맡기고 자기만 착한 일 하는 것처럼 그러는 건 참 미웠다. ㅋ)
그 사람의 주름이 참 곱기도 하고 깊기도 해서
그렇게 늙었으면 좋겠다, 늙어갈수록 정말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라디오.
사실 난 영화가 약간 지루했고
그건 아마 이 영화의 중요한 매개인 라디오 때문일거다.
영화는 지역 속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라디오가
풋풋하고 향수를 자극한다고 생각한 거 같은데
난 이미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을 보면서 그런 것들-
동네에 소소한 일상이라든가 전국 방송에서 시도할 수 없는 막말? 혹은 아무나 디제이 같은 거라든가
-을 본 적이 있어서 별로 새롭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던 거 같다.
단지 공동체 라디오도 좀더 활성화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정도? ㅎㅎ

여기서 비틀즈 코스프레 하고 나온 이스트리버 너무 좋았삼.
제일 좋았던 장면은 처음 나올 때 순대국 하나에 소주 4병 시킨 것! ㅋ
박중훈 노래도 노브레인 노래도 그리고 이들이 부른 거 말고 그냥 삽입된 노래들도
좋았다. 쓸데없이 막 감동 노래 울어라 하며 비장하게 튼 노래는 별로였지만.

흠, 그리고 믿음, 동지.
예전에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정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어주고,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주고, 기다려준다면
그만큼의 큰 힘은 없을 거란 생각.
이준익 감독이 '마음 맞는 사람하고는 오래 일 못해도 뜻이 같은 사람하고는 평생 일할 수 있다'류의 인터뷰를 한 걸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오래 함께 있으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그 자체가 힘이고 에너지인 사람들.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와 오래오래 함께 늙어가고 싶어했었다는 걸,
떠올렸다.


이사

월화수목금토일2006. 9. 22. 02:33
이사하고 나니 아주 오랜만에 내 방이 생겼다.
책상과 책장을 놓으니 그럴 듯 하다.
올 들어 두 번째 이사.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여전히 어렵고 그립고 괴롭고 보고싶은데
가장 큰 감정이 두려움이라
이제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마 비슷한 생각일 거라고 .. 그렇게 생각해.
과감하게 돌아서는 쪽이
서로에게 나았을 수도 있겠지.
그러다 이 곳에서 방 하나씩을 가지고 사는 것도 참 좋았을 거라고
문득 생각해 본다.

이번 집에선 좋은 일들만 많으면 좋겠다.

불면증

월화수목금토일2006. 9. 14. 03:35
잠들기가 왜 이렇게 어렵니.
벌써 몇 시간째 반복.
배가 또 아파온다.

수백번 수천번 비슷한 생각으로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기.
지겨울 법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