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토요일

월화수목금토일2018. 4. 7. 17:46

토요일에 출근하면 때때로 몸이 묶인 채 일하는 거 같다.

다른 업체들은 대체로 쉬는 날이니까 연락을 하기도 애매하고, 교대근무라 절반의 직원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혼자할 수 있는 일들만 한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보조하고,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메모해야 할 내용들을 적어두고.

오전행사가 있어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오후 서너시쯤 되면 '월요일에 해야 할 일'에 하나 둘 to do list를 적게 되는 토요일.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어제 만나고 나서 못다한 얘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말들인가가 맴돌았다.

하지만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고 오전을 바쁘게 보내고 나니 뭘 써서 보내고 싶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얘기였던 거 같은데..

생각나는 건 그 때 그 때, 묵히지 말아야 하나보다.

말로 휘발시켜버리지말고, 어딘가에 기록하면서.


책상 위에 놓인 치자나무도 곧 꽃을 피울 듯하다.

봄이 어서 왔으면.

따뜻한 날이 되면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울지도.

일요일

월화수목금토일2018. 4. 1. 16:06

일요일 아침, 

딩동. 

내복을 입은 채로 아이가 뛰어나가 친구를 맞이한다.

서로의 약속도 없이, 부모들끼리의 합의같은 것도 없이 

그냥 내킬 때 벨을 눌러서 만나는 사이.


'초등학교 친구는 엄마가 만들어준다'는 말에 눌려 아이가 1학년 내내 나 혼자 안절부절했다. (뭘 하지도 못하면서)

내 걱정과 별개로 아이는 조금씩 자기 삶의 반경을 넓혀가더니 

눈물과 싸움과 서운함을 지나 친구들을 만들었다.

나도 이제는 '아이가 속상해할 때 백업군' 정도로 내 포지션을 잡아가고 있고.


내가 이 녀석의 또래였을 때, 우리집은 동네 놀이터였다.

어른들은 없고, 잡동사니가 많고(장난감이 아닌 '진짜'를 가지고 놀 수 있다!), 어질러도 나중에 혼나지 않는 특이한 집(왜냐면 원래 어질러져있어서)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와 엉망이 되어 있는 집을 보고 가슴이 턱턱 막혔을 엄마의 심정은 30대가 되어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일드 '마더'를 보다가 그 예쁜 아이를 학대한 엄마를 이해하게 됐던 장면,

혼자 아이를 키우며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가득 찬 양동이에 물 한 방울 같았던, 엉망인 집과 너무 예쁜 아이... 

겨우 삼십대에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엄마를, 아직도 온전히는 잘 모르겠다. 


아침부터 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점심을 챙겨 먹이고

빨래와 설거지를 마친 뒤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니

영락없는 일요일 주부놀이다. (feat.야구)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요즘의 나에게 실망할 때도 많지만

무언갈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요즘의 나는 참 편안한 거 같다.

하지만 어떤 짜릿함은 '그 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언젠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목요일

월화수목금토일2018. 3. 29. 17:33

지난주 목요일에 갑작스레 아픈 이후 일주일 넘게 금주 중이다. (마지막 음주 지난주 화요일)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반주를 홀짝홀짝하는 게 큰 즐거움인데, 그걸 못하는 게 아쉽다.

원래 블로그를 다시 써야지 결심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했던 카테고리가 "오늘의 술상"인데!

한의사님은 최소 2주 금주를 권하셨다. 술을 못 먹는 거 자체가 괴로운 것은 아니다. 거기에 딸려오는 맛있는 음식과 불콰한 수다, 한 톤 높은 웃음소리 같은 게 그리운거지. 


어젠 정말 오랫만에 영화관에 갔다. 어둡고 막혀있는 곳에 가는게 꺼려졌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덩케르크'니까 거의 9개월만에 간 듯.

영화관에 들어가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려서 정 안되면 나가자고 결심했다. 좋아하는 감독님의 오랜만의 신작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감독님께도 양해를 구하고, 버틸때까지 버텨보자 생각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하고 나간 마스크가 큰 도움이 됐다. 심호흡. 불안감 잊기. 상담받으며 들었던 몇 가지 법칙들을 기억했다. 들고 간 가방의 손잡이를 꼬옥 쥐고 손을 주물러 온도를 높이기도 했더니 조금씩 나아졌다.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잘 견뎌서 스스로를 양껏 기특해해주기로. 영화가 짧았던 것도 고마웠다. 흐흐.


몸의 변화를 어떻게 기록해두어야할까? 

오늘은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을 읽었는데

나는 아주 민감한 편은 아니고 약간 민감한 편에 속하는 사람인 거 같다. 그 중에서도 외향성이라는 가면 장착이 잘된.

나를 위해 읽은 책인데 나보다는 아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조만간 정리해봐야겠다.


오늘따라 반차/연차 낸 직원들이 많아서 사무실이 한산하다.

마음껏 딴짓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음.

어디선가 이 블로그를 사찰하지 않는한... 일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