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수상한 룸메이트 +17
룸메와 다투었다. 이틀 간 루씨에서는 티비소리, 자판치는 소리 말고는 소리가 나지 않고 있다.
말하는 게 인생의 낙이자, 버릇인 내가 이렇게 입 다물고 있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건만...

시작은 내가 제공했다.
나의 관계들에 대해 이해도가 정말 높은 룸메에게-
나는 룸메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듯한 실수를 한 거다.
그건 시간계산을 잘못한 바보같은 실수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전부터 많은 걸 참아주고 감수해주었던 룸메에게는 좀 많이 서운한 일이 돼 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이리저리 사과도 해 보고 애교도 부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완전 마음이 토라져버렸고 다음날 아침부턴 내가 쌩-

뭐랄까, 룸메와 나는 그런 면에서는 속도의 차이가 좀 있다.
나는 막- 말하고 막- 화내고 막- 울고 지랄해야 풀리는데
룸메는 대체로 혼자 입을 닫아버린다.
그럼 나는 못 견뎌서 또 막- 얘기하다가 제 풀에 지쳐서 그 때부터 화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룸메가 화가 풀릴 때 쯤이면 나는 손대면 깨질 거 같은 냉정녀로 변해있는 것이다.
이 악순환은 근 4-5년을 반복돼오면서 서로 다신 안 볼 것처럼 으르렁 거리기도 했는데,

나의 속도에 맞춰 말을 해 보려고 노력하는 룸메와
기린 언어 덕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 나의 변화에 맞추어
요즘엔 꽤나 안정적인 1-2년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제 슬슬 약발이 떨어져가는 건가. 흑.

친구 모모씨의 말처럼 한 성깔씩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어찌 티격태격 안 할 수 있겠냐마는
장기전은 힘들다. 이럴 때면 내 인생이라는 게 참 이 사람에게 영향을 이리도 많이 받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게 좋은 거라 하던데, 나는 내가 초라해지는 거 같아 싫다. 나 혼자도 잘하는 스스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스스로 사람이 되기에 아직도 멀고 먼 나는
입으로 말하는 대신 여기에 끄적끄적-

아- 잠 안 와!

어제 어버이날 기념 폭음으로 느즈막히 일어나 오후 내내 청소를 했다.
진짜 오랜만에 하는 집 청소.
이불도 털어내고, 베갯잎도 빨고, 설거지 빨래 등등등을 하고 나니 이제 좀 집 같다.
물론 내 화장대와 내 책상은 여전히 청소 번외지역으로 남아있지만;;

오늘은
루씨 입성 백일이 되는 날.
하루하루 세어 보며 살만한 여유는 없었으나
어제 문득, 핸드폰 디데이에 입성일을 찍어보니 +99가 뜨더라.

나름 기특하다.
복닥복닥 고 몇 달 사이에도 열심히 싸워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좋은 점들을, 예쁜 점들을 발견하고 있는 게
그렇게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좋다.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에 대해 묻고
함께 사는 우리가 결혼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를지 궁금해하지만
우리는 그냥 조금 다르게 사는 것 뿐, 어떤 건 과정이고 어떤 건 결과고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고민들도 정리할 겸
사는 이야기들도 기록할 겸 해서
수상한 룸메이트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다음 회부터 기대해 주시길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