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수상한 룸메이트 +17
집에 왔다.
어제는 뻗어서 잠들고 나서 12시간 정도를 내리 잔 거 같다. 에리카네 집이 그렇게 좋았고, 거기 말고도 잠들었던 공간들이 꽤나 좋은 곳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입술은 퉁퉁 부르터 있었는데 집에 와 하루를 자니 거의 나았다. 좁네, 지저분하네 어쩌네 해도 집이 좋긴 좋은 갑다.

빨래들을 돌리고 짐을 좀 풀고 집 정리도 하고 싶다.(여기서 해야 한다- 라고 썼다가 지웠다.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하지 않는 것은 참 미련한 일이고 너무 싫은 말투이며 결국 자신을 위한 변명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 아직 다 하진 못했는데 일단 책상에 먼저 앉았다. 컴퓨터도 큼지막하니 자판 치기 편해서 좋구나!(여행에서는 엄마의 고진샤 놋북을 빌려갔었다.) 밀린 댓글들을 달고 사진도 좀 옮겨 놓으려고 했는데, 여기 저기 링크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이렇게 멍하니 있으니 집이고나, 싶기도 하고.

이번 여행에서 네덜란드의 여러 집들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서 집, 사무실 등의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넓다 좁다 그런 거 보다, 그 공간에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사용하는지에 관한 건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지역에는 높은 아파트가 없도 4-5층 내외의 빌라 비슷한 것들이 아파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집들이 다 오래된 유적지 같은 암스테르담 같은 경우도 그렇고, 새로 지은 건물이 많은 로테르담도 그렇고, 집들의 문이 다 다르게 생겼다. 창가에는 집주인의 캐릭터를 알 수 있을 법한 장식품들이 놓여져있다. 어떤 집은 꽃병이고, 어떤 집은 인형이고, 어떤 집은 깔끔한 블랙 러그, 집 구경만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나는 집을 꾸미는데 정말 약한데, 결국 그런 걸 해 본적이 없어서다. 그냥 틈에 뭔가를 구겨넣고 옷장엔 옷이 있고 책장엔 책이 있는 거지 전체의 구조 같은 건 사고하지 못하는 거랄까. 내가 사는 집이나 사무실은.. 꾸미려는 흔적은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미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편인 거 같다. 그래서 그들의 깔끔함, 혹은 개개인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집들이 부러웠다. 집에 관한 얘기는 참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음.

뭐 그래도 지금 잡동사니로 가득한 책상에(주민등본과 화투, 논문과 브라자가 함께 널부러진 꼴이라니!) 늘어지게 앉아서 포스팅을 하는 것도 참 좋다. 안정적인 느낌... 더러운 곳에서 마음이 안정되는 나는 뭐람. 차차 리뉴얼의 계획을 세워봐야지.

돌아왔어도 멍 때리고 있었는데, 낼 부터는 끼릭끼릭 돌아가게 될 거 같다.
좋을까? 나쁠까?
해 봐야 알 노릇.

+) 나의 귀국 날짜에 맞춰 이비에스에서는 다큐페스티발을 하고 있다. 유후-

공항

수상한 룸메이트2008. 9. 22. 13:10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도 직항 비행기를 탈 수 있을텐데...

지금은 타이페이 공항이다. 암스텔담의 스키폴 공항에서 방콕까지 11시간 반의 비행을 하고, 방콕 공항에서 1시간 여를 대기했다가 타이페이로 다시 3시간 반 정도의 비행을 하고 지금 3시간 반의 기다림을 하는 중. 여기서 인천까지 가려면 또 3시간 정도 비행을 해야 하고, 거기서 집으로 가려면 또...

좁은 의자에 쳐 박혀 똑같은 냄새가 나는 기내식을 먹고 건조한 공기에서 숨을 쉬고 먹먹해지는 귀를 코를 막은 채 견뎌야 하는 비행을, 장시간 하는 건 정말 스스로에세 폭력적인 일인 거 같다. 돈 아끼는 것도 좋지만 내 몸도 좀 아껴야지... 갈 때도 올 때도 꼬박 23시간이 걸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나를 학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돈을 벌든가 비행기를 타지 말든가.
무엇보다 지금 짜증이 치솟는 건, 암스텔담 공항 면세점에서 산 술을 빼앗겼기 떄문이다. 젠장. 타이페이까지 오는 건 괜찮은데, 여기서 서울로는 못 가져 간단다... 상눔이 쉐이들. 다른 걸 가져갔음 좀 덜 억울했을텐데...ㅠ.ㅠ 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직항을;;;

뭐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놓았으나
사실 컴퓨터를 키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귀여운 친구에세 메일이 와 있었기 때문.
룸메가 홀딱 빠져버린 그녀는 나의 네덜란드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

신부 들러리이자 에리카와 원의 조카인 소피-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고 앞으로는 메일 친구가 되잖다. 으히히.
드디어 스무살 연하와도 친구가 되었구나!
소피와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결혼식,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여타 등등의 일들은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손목이 아픈 관계로 이만...ㅎ



안녕?

수상한 룸메이트2008. 9. 19. 04:23
날씨가 몹시 춥다. 내가 가져온 옷들은 거의 대부분이 쓸모없는 것들이 되었고 여행 전 날 유니클로에 들러 잠옷 겸 홈웨어로 산 후드티만이 입을만한 물건이다. 옷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입고 나서 결국 예상에 없던 지출을 꽤나 많이 하게 되었다. 물가도 엄청 엄청 비싼 이 곳에서 한국에서는 유행도 지난 옷들을 사려니 배가 좀 아프지만 초겨울 날씨인 여기에서 달리 버텨낼 재간이 없다.

같이 사는 사람과 여행 같이 살고 있어서인지 특별히 여행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6년 전 처음으로 왔던 암스테르담은 참 외로웠던 기억이었는데 지금은 멋진 동행자와 이 곳에 사는 친구까지 있으니 그냥 가까운데 친구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영어로 이야기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있지만 적당히 몇 개의 단어를 얘기하면 훌륭히 들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이야기도 즐겁다.

요 며칠 간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꽤나 많은 곳에 돌아다녔는데, 그에 대한 기록은 아마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야 가능할 거 같다. 내일은 드디어 Erika와 Won의 결혼식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게스트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에 우리는 한국으로 출발.
방콕, 타이페이, 인천을 거쳐 루씨로 돌아가면 조금은 피곤하갰지만 여행보다 재미난 일상이 기다릴 거 같은 느낌!
기다려-

+) 댓글들은 돌아가서 욘니 달겠음. 모두 보고 싶어요-

* 에리카의 집은 너무너무 좋아서 여기서 평생을 살고 싶을 정도다.

* 어젠 자전거를 실컷 타서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 무선인터넷은 잘 되지만 자판을 치기 힘든 놋북 때문에 글쓰기는 조금 어려움

* 자동로밍이 안 돼 대략 낭패
아님 덕분에 더 자유로운 건가?

아아아
참 좋아요.

20080822

수상한 룸메이트2008. 8. 22. 02:11
비가 와.
곤죽이 되어 들어오자마자 가방도 들러맨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12시가 넘으면
너의 생일을 제일 먼저 축하해 줘야지, 생각했기 때문.

너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축하해, 말해주고
간장에 쓱삭 밥을 비벼 먹고 나니 잠이 달아났다.

보슬비 소리가 들리고
배가 부른 우리는 책상에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키고.
모기를 잡으려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된 너와
슬슬 다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나.

다행히 아직 예쁜 우리들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