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의 눈빛보다 야멸찬 것은 없다, 고 얼마전 비공개 글을 썼다. 그 한 줄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할 만큼 그날은 속상했다. 그런 눈빛은 어째서 감춰지지 않는가, 상대를 원망해보기도 하고, 언젠가 나 역시 들켜버렸을 그 눈빛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마음은 다스려지겠지만 그 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거 같다. 예전과 똑같아질 순 없겠지.
사람이 습관이 정말 무서운게, 아니 익숙하다는 게 정말 무서운게,
한창 술을 곯아떨어질 때까지 퍼부으며 마시던 사람들을 만나니, 그 때처럼 마시게 된다. 그리고 몸도 그 때 같이, 소주를 족히 열댓병을 넘게 비우고도 멀쩡하다. 지껄이지 않아도 될 말을 지껄이고, 몇년도 더 된 얘기들을 하고 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회사 나갈 사람을 새벽 4시에 불러내 술을 마셨다. 다들 조금씩은 달라졌고, 할 수 없는 얘기들도 생기고, 혹은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생겼지만, 하루를 그냥 4년 전으로 다녀온 거 같은 기분. 요 며칠 정말 죽어라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딱 그만큼의 날이었다. (그들과 섹스 얘기를 그렇게 심도 깊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ㅎ) 꼬장을 부려도 별로 창피하지 않았을 법한 멤버였는데, 어찌나 필름도 안 끊기도 멀쩡한지, 기특도 하지. 그래도 거의 몇 년만에 이렇게 마셨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려주었다. 책도 읽고 아내의 유혹도 보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지만, 내일부턴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로(과연;;).
수키랑 같이 산지 이제 다섯달쯤 돼간다. 요즘은 내가 이 녀석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고, 여하튼 그런 어떤 일들에도, 이 녀석을 안고 5분만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제 고양이의 온도는 사람보다 1-2도 정도 따뜻해서 실제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ㅎ) 이전에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도 또 다른 거 같다. 이것도 나이먹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구는 애 낳을 때가 되어 그런다고도 하던데; ) 한참 안고 있으면 답답해지는지 내 빰을 후려갈기고 가버린다. 뭐, 그래도 좋아. 私は すきが すきです。
짤방은 쥐 인형을 잡으려 점프 중인 수키씨의 매혹적 뒷다리;
사람이 습관이 정말 무서운게, 아니 익숙하다는 게 정말 무서운게,
한창 술을 곯아떨어질 때까지 퍼부으며 마시던 사람들을 만나니, 그 때처럼 마시게 된다. 그리고 몸도 그 때 같이, 소주를 족히 열댓병을 넘게 비우고도 멀쩡하다. 지껄이지 않아도 될 말을 지껄이고, 몇년도 더 된 얘기들을 하고 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회사 나갈 사람을 새벽 4시에 불러내 술을 마셨다. 다들 조금씩은 달라졌고, 할 수 없는 얘기들도 생기고, 혹은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생겼지만, 하루를 그냥 4년 전으로 다녀온 거 같은 기분. 요 며칠 정말 죽어라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딱 그만큼의 날이었다. (그들과 섹스 얘기를 그렇게 심도 깊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ㅎ) 꼬장을 부려도 별로 창피하지 않았을 법한 멤버였는데, 어찌나 필름도 안 끊기도 멀쩡한지, 기특도 하지. 그래도 거의 몇 년만에 이렇게 마셨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거려주었다. 책도 읽고 아내의 유혹도 보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지만, 내일부턴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로(과연;;).
수키랑 같이 산지 이제 다섯달쯤 돼간다. 요즘은 내가 이 녀석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고, 여하튼 그런 어떤 일들에도, 이 녀석을 안고 5분만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제 고양이의 온도는 사람보다 1-2도 정도 따뜻해서 실제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ㅎ) 이전에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도 또 다른 거 같다. 이것도 나이먹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구는 애 낳을 때가 되어 그런다고도 하던데; ) 한참 안고 있으면 답답해지는지 내 빰을 후려갈기고 가버린다. 뭐, 그래도 좋아. 私は すきが すきです。
메롱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9. 3. 2. 00:17
엄마와의 대화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대화의 대부분이 걱정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밥 먹고 다니냐, 추운데 이불은 잘 덮었냐,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냐, 집에 보일러는 잘 돌리냐, 요즘 돈 없지 않냐 등등. 성질머리가 못된 나는 '내 나이가 지금 몇이냐, 엄마는 내 나이때 애가 둘이었는데, 외할머니가 그런 거 엄마한테 맨날 물어봤으면 짜증나지 않았겠냐!'며 금세 윽박을 질러대고 만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잔소리를 몹시 경계하며 조심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식새끼는 아무리 커져도 자식새끼인 것을 어쩌겠는가.
성질머리가 나빠 화부터 내는 나와는 달리 동생양은 새로운 대화법을 개발하였다.
이른바 메롱대화 ㅎ
엄마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잔소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메롱을 하는 것.
화를 내는 대신 가볍게 혀를 내밀기만 하면된다. 그리고 재미있기 때문에 둘다 이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가끔 엄마는 '이것마저 잔소리라고 하냐!'라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후훗.
이제 좀더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나.
하지만 자식도 없으면서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나야말로 어쩌누.
+) 짤방은 요즘 한창 술을 들입다 퍼마시고 싶은 마음의 본인을 표현한 것.
성질머리가 나빠 화부터 내는 나와는 달리 동생양은 새로운 대화법을 개발하였다.
이른바 메롱대화 ㅎ
엄마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잔소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메롱을 하는 것.
화를 내는 대신 가볍게 혀를 내밀기만 하면된다. 그리고 재미있기 때문에 둘다 이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가끔 엄마는 '이것마저 잔소리라고 하냐!'라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후훗.
이제 좀더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나.
하지만 자식도 없으면서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나야말로 어쩌누.
워낭소리에 대한 사소한 생각들
골방/영화관2009. 2. 25. 02:08
처음 워낭소리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영화가 불편했다. 재미가 있다, 없다로 말한다면 재미가 있었다. 감동적이라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나오는 할머니가 좋았다. 그 할머니의 말이 재미있었고 할머니가 좋았지만, 그 할머니의 말이 영화 속에서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그런 느낌들이 이어져서 할머니와 소, 할아버지가 다 불쌍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뭐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자막 때문에 좀 열이 받았다. 주인공이 셋인데 왜 헌사는 둘한테 하냐 이거지. 할머니는 뭐냐고.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만들고 있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되겠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간절히 위로받고 싶어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자기가 가진 죄책감들을 쓸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싫었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많았지만, 여러 흐름을 타고 이 영화는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200만을 바라보는 초대박영화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메가가 이 영화를 친히 관람하시면서, 각종 논란을 몰고오고 있기도 하고.
이 영화가 독립영화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냐 아니냐 라는 논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논란은 독립영화나, 독립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입지를 좁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독립영화라서 용서하거나, 독립영화라서 비판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나도 처음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며, (이 영화는 독립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이런 영화가 독립영화라고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면 어쩌나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걸 시작으로 더 많은 영화들을 보고, 독립영화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이 생기면 좋으니까. 정책적 투쟁으로 상영관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메가와 함께 영화를 본 그 퍼포먼스가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고놈은 워낭소리가 가진 어떤 장점들말고, 자기가 필요한 것 - 열심히 일하면 경제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 만 취할 놈이니까, 그런 자리에 가서 구색을 맞춘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를 위해서라면, 더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을 조직해서 단체로 피켓팅을 하든 뭘하든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쫌 너무 변명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 제작자도 싫고 영화도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뻔한 얘기를 뭐하러 늘어놓으냐면,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때론 무지 권력적이라는 것을 오늘 어떤 자리에서 느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쓰일 말이라면 나는 독립영화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져버렸기 때문에. 기억해두고 싶다.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걸로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지는 말자.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만들고 있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되겠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간절히 위로받고 싶어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자기가 가진 죄책감들을 쓸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싫었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많았지만, 여러 흐름을 타고 이 영화는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200만을 바라보는 초대박영화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메가가 이 영화를 친히 관람하시면서, 각종 논란을 몰고오고 있기도 하고.
이 영화가 독립영화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냐 아니냐 라는 논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논란은 독립영화나, 독립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입지를 좁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독립영화라서 용서하거나, 독립영화라서 비판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나도 처음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며, (이 영화는 독립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이런 영화가 독립영화라고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면 어쩌나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걸 시작으로 더 많은 영화들을 보고, 독립영화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이 생기면 좋으니까. 정책적 투쟁으로 상영관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메가와 함께 영화를 본 그 퍼포먼스가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고놈은 워낭소리가 가진 어떤 장점들말고, 자기가 필요한 것 - 열심히 일하면 경제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 만 취할 놈이니까, 그런 자리에 가서 구색을 맞춘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를 위해서라면, 더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을 조직해서 단체로 피켓팅을 하든 뭘하든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쫌 너무 변명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 제작자도 싫고 영화도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뻔한 얘기를 뭐하러 늘어놓으냐면,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때론 무지 권력적이라는 것을 오늘 어떤 자리에서 느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쓰일 말이라면 나는 독립영화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져버렸기 때문에. 기억해두고 싶다.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걸로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