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운 소녀 시절

호어스트의 포스트잇 +79
세 번 퇴짜를 맞았다.
끙.
술이 먹고 싶었던 걸까.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걸까.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몇 년 전만해도 친구란 모두 술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편하게 불러내 술 먹자고 할 사람은 자꾸 줄어든다.
오늘 마지막까지 전화할까말까 망설였던 녀석은, 아마 전화하면 옳다쿠나 나왔겠지만, 결국 전화하지 못했다. 그 녀석과 아무말없이 몇 시간이고 술을 먹어도 즐거운 때가 있었는데, 마냥 고맙기만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게 조심스러워진다. 이것은 나이를 먹는 것인가? 아님 그저 재미가 없어진 것인가?
집에 오는 길에 한참 생각하면서는, 그 친구를 만나 술 먹는 게 너무 편하던 어떤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 달라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 때 그에게 기대하던 것과 지금 기대하는 건 다르니까.

많은 술친구들을 잃으면서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절반은 피했고, 나머지 절반은 자연스레 없어졌다.
한창 즐겁게 술을 마시던 몇몇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조금 서운해졌는데,
이것도 내가 아쉬우니까 그런거지 내가 연락이나 잘 하고 살았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라 할 말도 없다.
내가 과거에 나와 많이 달라졌을까?
어중간하게 서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뭐 결국 술을 마시긴 했지만...

호어스트의 포스트잇2009. 1. 21. 01:50
몰상식이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
서울 한복판에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보고 있는 앞에서, 사람들이 건물에서 떨어지고, 불에 타 죽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그저 아침 출근길이 밀렸던 이유였을 뿐이고, 누군가는 보상금을 더 받으려다 사람이 죽은 일일 뿐이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점점 쉬워지는 세상에 살면서
사는 것이 참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게 누군가의 말처럼 모두 '신자유주의'의 문제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집을 오가는 '길'에
누군가는 박스를 깔고 선잠을 자고, 역사 안쪽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것,
내가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웃는 시간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이들이,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간다는 것,
내가 그저 허름하다고 생각했을 건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공간이었다는 것,
살려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지하철이 지날때 바닥의 울림이 느껴지던 광화문 바닥에 앉아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다시 집을 짓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힘을 모아 저항을 할 거라는 미니님의 발언을 듣고
눈물이 찔끔 났다.
아마도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어떤 힘이 멍하던 나를 때려준듯.

무뎌지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그렇게 계속 할 수 있길.

용산 철거민 투쟁 중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한국을 당장! 떠나!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수키도 함께 기대해요.


월요일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았다.
20년 전 이야기를 한다는 그 속에 지금이 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내 마음 편하자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모여서 얘기라도 했으면..

전쟁 뷁이다.

2008년의 나의 00

 


옥랑상에 낼 기획서를 작성하고

열린채널에 떨어지고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에 상영 기회를 얻고

몇 번의 다큐멘터리 세미나를 하고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떨어지고

옥랑상 면접에서 떨어졌다.

루씨로 이사를 하고

여성노동자회와 일하고

희망청을 만나고 함께 도 하고


그러면서 봄이 왔다.

개청춘 작업을 시작했고

기획서를 냈다가 오재미동에서 떨어지고

영진위에서 덜컥 붙었으며

영상위에서는 다시 1차 탈락을 하는 굴곡을 겪었다.


개청춘을 함께할 스탭들도 하나둘 모였다.

<황보출, 그녀를 소개합니다> 는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언급도 되었으며

인천여성영화제에서도 섹션 중 하나로 상영하고

몇 군데의 복지관, 군산에서도 상영 기회가 있었다.

여성노조분들과의 미디어교육도 계속 되었고

몇 개월만 하면 될 것 같았던 교재는 여전히 붙들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 노인분들, 이주여성들, 대안 학교 아이들을 만나 교육을 진행했다.

원화백과 며칠간의 태국 여행으로 머리를 개꼴을 해 보았고

반이다와 스탭 1인이 함께 한 가평 엠티도 재밌었다.

친한 친구들이 줄줄이 결혼을 하고

못 미덥던 녀석이 등단을 하지 않나

티비 나오는 게 소원이던 녀석이 티비 나와 노래를 부르는 현장도 목격한

놀라운 한 해.

 

루씨를 떠나 나는 또 이사를 했고

새해는 또다시 짐정리로 시작되었다.

소매물도에서 실내가 10도이던 숙소에 작은 전기담요 안에서 보냈던 새해 첫날 세웠던 계획들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살면서 가장 많은 변화들이 있었던 한 해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즐겁고 소중했던 2008.

이제야 안녕~

 

2008년의 영화

 

여고생이다

전장에서 나는

주노

샘터분식

XXY

치즈와 구더기

3XFTM

미쓰 홍당무

솔로 36

더 클래스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스

 

 

2008년의 책

 

봄빛

신탁의 밤

 

 

2008년의 드라마

 

크크섬의 비밀

일지매

그들이 사는 세상

베토벤 바이러스

엄마가 뿔났다

 


 


지난 해를 제대로 안녕하는 마음의 정리도 못한채
감기와 함께 맞이한 새해.
진짜 구호소리 대신 효과음 박수를 들으며 축하한 새해.
2008년으로 끝내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아직도 주렁주렁 달고 가는 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가
아주 소중한
그런 날들로 가득차길.
아침 산에 올라 가만히 기도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