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을 새서 작업을 +_+
몹시 피곤한데다 아주 재미난 술자리를 거절하고 온 탓에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간만에 집중하니까 좋다.
내일부터, 아니 조금 있으면 또 새로운 일주일이 가겠지
사무실도 리모델링 했으니 ㅋ
활기차고 즐거운 한 주가 되길!
아직 아침은 아니고 다시 자기에는 늦은 시간.
알루미늄 이중창에 갖힌 집 속에선 새벽 공기같은 걸 맡아볼 순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냄새가 난다. 새벽 냄새-
잠들기 전인 어제는 to do list에 적어놓았던 여섯 개의 일 중에 다섯 개를 해 냈고 조금 지루하고 짜증나는 그치만 또 좋은 사람들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던 한 회의에도 두 시간이나 있어야 했고 또 다른 짤막한 회의는 인도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치뤄졌으며 집에 오는 길 내내 길모어 걸스를 볼 생각에 부풀어있었지만 동행이 있거나 동행이 사라진 순간부터 피곤한 전화가 왔으며 인도 음식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당고개에 내려 오뎅을 사 먹고 집에 와서 뻔뻔하게 삼치 구이와 밥을 먹기도 한
약간 피곤했던 날.
긴장했는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 버렸고
웁스,
밥솥은 예약 시간에 맞춰 밥을 하고 있네. 푸슁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조금씩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매일 조금씩 블로그에 뭔가를 쓰는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머리속에 있는 얘기들을 좀 꺼내 놔야 새 것이 들어 갈 거 같은데.
작년(!!!)보다 조금 더 조급해진 거 같기도 하고 냉정해진거 같기도 하고, 이해의 폭이나 속도가 너무 좁고 느려져서 대체로 모든 일이 지나고 난 후, 혹은 대화가 끝난 한참 후에 잘못들을 깨닫곤 한다. 다른 사람들을 푸쉬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정리하려고 하거나 하는 일들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오늘 짜증나는 회의에서 좀 배웠는데 그 순간에 있었던 분노들이 지나고 나니 다 내게 화살이 돌아왔다. 난 정말 잘 그러는데 말야. 다른 것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좋지 않은 현상.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할 거 같다. 이틀 집중해서 길모어 걸스를 보니까 사람들의 관계란 어찌나 짜증나면서도 아름다운지.
밥 냄새가 마구 퍼지고 있다. 프흡-
난 이 방이 좋다. 이 집에서 이 방을 내 방으로 쓴 적은 없었다. 이 집에 이사왔을 때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휴학을 하면서 집에 왔을 때는 나에게 제일 좋은 방을 내주었었다. 1년 반쯤 지나고 나는 다시 자취생활을 했고, 2년 10개월이 지나고 이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땐 지금 이 방이 내 차지가 됐다. 사실 여기서 오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페인트칠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책상과 책장을 놓았고, 벽에 사진들을 마구 붙여놓고 좋아하는 달력 그림도 걸어놓고 싶었다. 내 씨디들을 새로 칠한 나무 박스에 넣고 잠을 잘 때 종종 방에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게 좋았고 커다랗고 불투명한 유리도 좋았다.
이제 보름 뒤면 난 다시 이 집을 떠난다. 정말 유목민처럼, 난 아직 풀지도 못한 이삿짐을 다시 싸야 한다. 물론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또다른 좋은 시작이 될테지만- 이상하게 슬프다. 같이 페인트칠을 도왔던 부모와 애인이 이 하늘색이 방을 정신병동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했어도 난 이 색깔이 좋았는데. 이사에 단련된 나에게도 공간에 대한 애착이 있었나보다.
2월에 있을 몇 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 생각을 하면 2월이 한 달 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르바이트의 납품이 정말 1월 말에 끝난다면, 3월에 다른 '정기적'인 일들이 시작되기 전에 2월은 참 아름다울 거다. 게다가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설날도 있잖아! 난 아직도(올해는 장담할 순 없지만) 세뱃돈을 받는다. 그래서 아직 설날이 재미있다. 후후
여하튼 2월이 좀더 재미있고 신났으면 좋겠다. fabulous February!!(에이프릴 어법ㅎㅎ)
일단 이른 아침부터 먹고-
뭐랄까.. 넉살이 좋아졌달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기 전에 나는 냉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듣는 얘기지만..) 혹은 서울깍쟁이 같다거나 새침떼기 같다거나 뭐 대충의 이미지가 그랬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고 친해지면 사람들과 잘 지냈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선 입 닫고 가만히 있기만 했고, 선배들에게 싸가지도 없었고, 후배들에게는 좀 무서운 선배로 보였던 거 같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긴 했어도 혼자 밥을 먹지는 않았고 조금만 혼이 나도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거나 하지도 못했다.
근데 어제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허허 웃으며 놀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카메라를 들었다. 오늘 날 만났던 오래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니가? 니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 하면서 날 비웃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서글서글해지고 넉살도 좋아졌다. 싫은 것에 분노하는 건 여전하지만 티를 덜 내기도 하고 뻔뻔스러워진 면도 있고 혼자 밥도 잘 사 먹고 뭐 여하튼 그렇다.
처음 이 작업의 언저리에 오게 된 건 2004년,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졸업을 앞두고 멍-, 하니 뭘 해야 할지 고민만 하던 나는 '학생 신분으로는 시도해도 덜 쪽팔릴 일'들을 졸업 전에 다 해 두고 싶었고 그래서 평소에 하지않던 각종 도전들을 시작했다. 그 중에는 밤 새 술 먹기 같은게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끔 정말 '시도'라는 걸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는 거였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인데, 내가 당시 활동하던 단체에는 이주센터가 있었고 거기에 누군가가 '이주노동자인터뷰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고 모집 공고를 올려놓았었던 게 시작이었다. 친구들이랑 캠코더 가지고 몇 번 장난쳐본게 전부였던 나는 그냥 막연히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고 '무경험자 참여 가능'이라는 문구에 용기를 얻어서 '혼자' 그곳에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전화를 하던 순간, 아무것도 쓸 게 없던 이력서 같은 걸 쓰던 순간, 그리고 담당자였던 이*** 씨를 만나기 위해 힘들게 4층 계단을 오르던 순간들 모두 다리가 후덜덜 떨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 가장 용기 있던 순간...ㅎㅎ 나 같이 소심한 인간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마땅히 할 일없던 스텝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를 배우고 만들고, 나는 지금 예전보다 훨씬 넉살 좋고 뻔뻔한 인간이 되어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싫지는 않다. 한 번 어떤 끈을 놓아버리고 나니까 살기가 좀 편하기도 하고..ㅎㅎ
이 밤에 이걸 이렇게 주저리 쓸 계획은 아니었는데. 쩝
쓰다보니 이***씨가 보고 싶다. 라**언니도 보고 싶고. 흑.